고교 도서관에 3만권, 학생들 말문 트다
학교도서관에는 책이 있다. 이 책들은 책꽂이에 꽂힌 채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인문학이 더해져 책이 아이들을 찾아가게 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인문학이 도서관을 만나 어떤 멋진 결과가 나타나는 걸까?
대구서부고등학교는 1층 모퉁이에는 교실 두 칸 남짓의 작은 학교도서관이 있다. 학교 이름을 고유어로 살린 '하늬글샘'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서관을 통해 학업으로 심신이 지친 학생들은 언제나 인문학에 흠뻑 빠질 수 있다. 인문도서를 활용한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이 항상 인문학과 가까이에서 지내는 '하늬글샘'의 모습을 살펴봤다.
◆대회와 축제가 열리는 학교도서관
서부고는 언어, 예술, 과학, 기술 등 각 분야에 걸쳐 3만 권이 넘는 책을 구비하고 있다. 학교는 인문도서를 도서관에 비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인문학을 즐기고 가까이할 수 있도록 대회와 축제를 연중 개최하고 있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하늬 인문학 축제'는 서부고의 대표 인문학 행사다. 축제 때 진행되는 '낭독의 발견' 행사에는 책, 시의 내용을 낭독하거나 UCC, 연극 등 창의적인 방법으로 재구성해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지난해에는 '데미안'을 읽고 '사춘기, 방황의 끝'이라는 작품으로 재구성한 UCC작품이 주목을 받았다. 또 '야(夜)한 독서의 밤'에는 자석 책갈피 만들기, 학생 독서왕의 독서상담 코너 등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그 기간만큼은 밤 시간에 학교도서관에서 인문학 축제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허용해주기 때문에 학생들은 학업 스트레스를 잊고 인문학에 푹 빠질 수 있다.
'교내 미니 아고라 토론 대회'는 매년 100여 명의 학생이 참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에 익숙한 학생들은 각종 지역 토론 대회에도 참가해 참신함과 논리적인 언변으로 이목을 끌었다.
올해로 3년째 펼쳐지는 '인문학 독서 나눔 한마당'이라는 행사에서는 인문도서를 읽은 후 팀을 이루어 '테드'(TED'알릴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를 짧은 강연으로 전달하는 것) 형식으로 발표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장이다.
이 밖에 '나를 발견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인문학 독후감 대회'는 학생들이 독서활동을 통해 얻게 된 이야기,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독서기록장과 독후감을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다.
◆학생 스스로 인문도서를 찾도록 하는 서부고
서부고는 학생들이 청소년기부터 인문도서를 가까이 접하도록 하기 위해 '창의인성 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다. 학교가 정한 필독도서 100권을 읽고 이를 독서기록장에 쓰면 독서 결과를 인증해준다.
강봉숙 사서교사는 "필독도서를 선정할 때 인문도서를 중심으로 구성해 학생들이 이를 자주 접할 수 있도록 한다"며 "교내 디베이트 대회, 인문학 독서 나눔 대회, 학교 교육활동에 참여한 것도 인증제에 반영해 인문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를 높이는 데 시너지 효과를 낸다"고 했다.
서부고가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비결은 교사, 학생이 격식 없이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도록 한 분위기 덕분이다. 교사부터 책 내용뿐만 아니라 엉뚱한 상상까지 곁들여 발표하다 보니 학생들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진다. 전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단 부딪치고 보는 것이다.
또 교사가 개입하는 것보다 학생이 주도해나가는 독서 프로그램일수록 기대 이상의 발전을 거듭한다고 한다.
서부고 관계자는 "학교에서 큰 틀만 유지하도록 멍석을 깔아주면 학생 스스로 연간 4권 이상의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고 이를 보고서로 엮어 제출한다"며 "씨앗만 뿌려두고 한 번씩 살펴보는 것인데도 알토란 같은 뿌리가 교사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꾸 뻗어나가는 묘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인문도서 기부로 더욱 불붙는 인문교육
인문학이 아름답게 꽃피고 있는 서부고 도서관에도 기부받은 인문도서가 있다.
지난해에는 대구시교육청의 인문도서 기부운동으로 300만원을 지원받아 인문도서를 구입했다. 인문도서 기부운동으로 지원받은 책은 독서 멘토링 등 다양한 교내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유용하게 사용한다. 서부고 관계자는 "학생 5명, 멘토 교사 1명이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할 때 같은 책을 한꺼번에 빌려야 하는데 이때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어 학생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한편 인문도서 기부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문교육 기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지역에 인문학를 확산하는 데 도움될 것으로 본다.
서부고의 경우 지난해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이용해 10여 개의 동아리 학생들이 평리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인문학 재능기부를 했다. 인문학 교육을 통해 성장한 학생들이 다시 다른 친구와 동생들을 이끌어 주고 있는 것이다.
강 사서 교사는 "인문학을 통해 학생들이 자기 안의 무늬를 스스로 발견하는 것을 넘어 자신 밖을 돌아보고 자신의 무늬가 가진 아름다움을 나누는 것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