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eat는 집] 도토리·메밀묵

입력 2016-10-06 04:55:05

탱글하게 씹히고 쫄깃하게 감돈다

서민·귀족 아우르던 간식이자 술안주 매끄럽고 산뜻한 맛

무침·볶음·장아찌…대표적 저칼로리 식품 고혈압과 변비에 도움

'싱겁고 구수하고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시인 박목월은 '적막한 식욕'에서 묵 맛을 이렇게 표현했다. 묵은 예부터 서민, 귀족을 아우르는 간식이자 구휼(救恤) 음식이요, 술안주였다.

'동국세시기'에도 '녹두 포를 잘게 썰어 돼지고기, 미나리, 김과 섞고 초장으로 무쳐 봄날 저녁에 먹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특별한 맛은 없지만 매끄럽고 산뜻해서 입맛을 돋워주던 서민들의 음식인 묵,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동이족만이 이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1967년 발굴한 서울 암사동 유적지 토기 안에서 도토리가 발견된 걸로 보아 신석기시대부터 묵이 우리의 식탁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묵은 조리법에 따라 무침, 볶음, 장아찌, 탕평채 등으로 세분화되고 칼국수, 전골 등 다양한 요리로 응용도 가능하다. 대표적인 저칼로리 식품으로 비만 체질 개선에 도움을 주고 고혈압 예방, 변비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전통시대 묵은 민초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구황(救荒) 음식으로도 큰 효용이 있었다. 조선 중기 장계향 선생이 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에도 마을에 기근이 들자 도토리묵을 쑤어 농민들을 구제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도토리와 견줄 만한 구황작물로 메밀도 빠지지 않는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산간지방 민초들이 긴 겨울을 날 때 메밀묵은 둘도 없는 비상식량이었다. 가을을 맞아 묵집들이 서서히 손님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현수막이 부쩍 눈에 띄고 별미요리도 메뉴판에 새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맛 eat는 집' 첫 회는 대구와 근교의 유명 묵집들을 소개한다.

◆남구 '앞산손메밀묵집'

#30년 노하우의 깊은 육수 맛

대명동 옛 즉결재판소 자리에서 문을 연 후 20년 동안 주변 묵집을 평정했다는 손메밀묵집이 앞산 현재의 자리에 문을 연 집이다. 당시 수작업 메밀묵을 고집, 하루 한 솥만을 끓였는데 점심 무렵이면 재고가 바닥나 많은 손님들을 헛걸음시켰다는 악명(?) 높은 집이다. 묵집을 확장해 앞산 밑에 자리를 잡은 후 이종언(48) 씨가 선대의 가업을 잇고 있다. 이 씨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은 육수. 멸치, 다시마, 무로만 맛을 내지만 배합과 불 조절 노하우가 더해져 깊은맛이 나온다. 탱글한 식감과 쫄깃한 입맛은 전국의 묵 마니아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즉결재판소 시절부터 단골이었다는 김창수(53'대구시 장기동) 씨는 "별 식사 약속이 없으면 들르다 보니 하루에 두 번씩 오기도 한다"고 말한다.

▷주요 메뉴: 메밀묵채(5천원), 메밀손칼국수(5천원), 메밀묵무침(대 1만원)

▷주소: 대구 남구 대명동 555-6

▷전화번호: 053)654-1375

◆동구 '봉무할매묵집'

#도토리해물칼국수 메뉴 일품

봉무동 단산지 근처에 있는 식당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작업장이 하나 눈에 띈다. 주인 한재석(61) 씨의 수제 묵 작업장이다. 묵 맛집 대부분이 그러하듯 봉무할매묵집의 공정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한 씨가 자랑하는 메뉴는 도토리해물칼국수. 수제 도토리묵 자체가 귀한 현실에서 묵칼국수를 메뉴로 내는 건 드문 사례다. 부드러운 묵채를 면으로 뽑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 물론 여기에 한 씨만의 숨은 비법이 있다. 먼저 묵 꿇인 물을 두 번 걸러내고 거기에 밀가루를 섞어 반죽을 만든다. 묵과 밀가루의 비율은 6대 4. 여기에 홍합, 해물과 면을 넣어 끓이면 조리가 완성된다. 손님들이 담백하게 먹을 수 있도록 고춧가루 같은 자극적 양념을 피하고 있다.

▷주요 메뉴=도토리해물칼국수(6천원), 묵채조밥(6천원), 묵무침(9천원)

▷주소: 대구 동구 봉무동 단산길 7-11

▷전화번호: 053)981-9497

◆수성구 '욱수골할매묵집'

#친절+저렴+넉넉함이 비결

전국 맛집들은 보통 한자리서 수십 년간 터를 닦은 후 대박집이 된 경우가 많다. 그런가 하면 짧은 시간 내 내공을 집중해 맛집의 반열에 오른 곳도 있다.

수성구 욱수동 덕원고 앞에 자리 잡은 욱수골할매묵집이 대표적 예다. 주인 장분순(47) 씨가 욱수골에 묵집을 연 건 2011년. 그런데 불과 5년 만에 대구 최고 수준 묵집으로 올라섰다. 장 씨에게 비결을 물었다. '늘 친절하고 음식 넉넉히 퍼주고 착한 가격에 모신 게 다'라며 겸손해한다. 욱수골 등산로가 활성화되면서 등산객이 급증했고 수성IC가 열리면서 외지 손님이 는 것도 가게 흥행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가게에 작업장을 별도로 두고 그날그날 쓸 물량을 직접 수작업으로 만들어 낸다. 블로거들 사이 육수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 있다.

▷대표메뉴: 메밀묵무침(9천원), 묵채밥(5천원)

▷주소: 대구 수성구 욱수동 451-6

▷전화번호: 053)792-0488

◆칠곡 동명 '시골묵집'

#얼큰한 도토리묵 전골이 별미

묵 요리 대부분은 무침이나 묵채밥 정도. 간혹 지방에 따라 묵탕수나 묵국수가 나오기도 한다. 칠곡 동명의 시골묵집은 도토리묵 전골을 별미로 개발했다.

얼큰한 국물을 선호하는 손님이나 술꾼을 위해 주인 박윤수(61) 씨가 특별히 '제조'했다. 매콤한 버섯매운탕에 도토리칼국수를 말아 먹는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육수에 갖은 양념과 표고, 싸리버섯, 깻잎, 양파 등을 듬뿍 집어넣고 면과 함께 끓여 내면 별미가 완성된다. 재료로 쓰이는 버섯과 채소는 텃밭, 뒷산에서 채취한 것들이다. 면발이 탱글하게 살아 있어 젓가락으로도 불편 없이 먹을 수 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가지, 오이, 씀바귀, 비름나물도 추천할 만하다.

▷대표메뉴: 도토리버섯전골(2만원), 도토리묵채밥(6천원)

▷주소: 경북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184-1

▷전화번호: 054)975-5641

※'맛eat는 집' 취재 자문단=푸드 블로거 정영옥 씨, 전문양 푸드 칼럼니스트, 대구시 식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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