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불황, 힘든 자영업자 더 옥죄는 은행

입력 2016-10-05 04:55:02

'매출감소→연체율 상승' 판단, 대출심사 강화 등 '디마케팅'

대구 북구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는 김모(44) 씨는 며칠 전 대출 연장을 신청하러 거래 은행을 찾았다가 혹을 하나 더 붙이고 말았다. 5년 전 1억원을 빌려 이자를 꼬박꼬박 갚아 나갔지만 원금 부담 때문에 새로 대환(대출금을 새로 갚아 나가는 것)대출을 신청했다. 그러나 대출은커녕 '원금부터 갚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김영란법 이후 가뜩이나 매출이 뚝 떨어진 터라 통사정을 했지만 은행 측은 "은행 자체 신용위험평가에서 부실등급인 6등급이 나왔기 때문에 기존 대출을 갚아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 씨는 제2금융권을 찾아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연간 이자비용만 400만원을 추가로 부담하게 됐다. 은행에서는 4%에 대출을 받았지만 제2금융권에서는 8%에 달하는 이자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자영업자들의 타격이 불가피해지면서 금융권의 디마케팅(Demarketing'무분별하게 고객을 늘리기보다 실제로 수익에 도움이 되는 고객에게만 집중적인 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을 증대하는 것)이 일반 고객들에게로 확대되고 있다. 음식점과 소매업 등의 매출 감소가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져 리스크 관리에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올 초 부실 기업들을 대상으로 디마케팅에 나섰던 은행들이 김영란법 시행 이후 개인 고객들에 대해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을 줄이고, 대출한도를 보수적으로 책정하는 등 '관리'에 나서고 있다. 은행권에 이어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권의 대출심사도 강화돼 자영업자들의 자금 조달 통로는 더욱 좁아진 상태다.

DGB대구은행은 이미 올 초부터 개인에 대한 대출심사 기준을 강화했다. 신용등급 6등급 이상에 대해 지점장 전결권을 절반으로 줄이고, 대환을 거부해도 실적으로 인정해 주는 등 디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대구은행의 개인대출 잔액 9조7천억원(7만1천여 건) 중 김영란법에 의해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여신이 상당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등 시중은행들도 자영업자 대출에 대한 상황 점검을 진행 중이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직격탄을 맞을 음식업과 소매업 여신 비중이 적지 않아서다.

신한은행의 경우 올해 상반기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에서 도매 및 소매업 비중은 17%, 숙박 및 음식점업은 12%에 달한다. 대출 잔액 35조2천억원 중 김영란법에 의해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여신이 10조2천8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은행도 김영란법 관련 매출 비중이 20%를 웃돈다.

지역 은행 관계자는 "자영업자 대출은 1억~2억원 수준으로 건당 규모가 크지 않지만 경기 민감 업종이라 당장 연체율 증가로 나타날 수도 있다. 특히 폐업이나 전업을 하는 차주들의 여신 상황을 꼼꼼히 보고 있다"고 전했다.

3일부터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권의 대출심사도 강화돼 자영업자들의 돈 빌리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지역 은행의 한 신용 담당자는 "지난해 가계대출이 워낙 늘어나 부실 위험이 높아진 상태라 보수적인 접근이 불가피하다"며 "고객을 차별하고 외면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자산건전성을 높여야 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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