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우리가 지금 북성로를 걸어야 할 이유

입력 2016-10-05 04:55:02

걷는 리듬은 생각의 리듬과 같다고 한다. 사실 생각은 만들어지는 것이라기보다 저절로 나는 것이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산책을 즐겼으며, 무수히 많은 예술작품이 길가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잊고 있던 걷기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우리는 걷는 존재라는 사실 말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길은 구체적인 걷기 체험을 통해서, 때로는 그 혹독한 고통을 통해서, 근원적인 것의 중요함을 일깨움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의 길에서 멀리 떨어진 내면의 지름길을 열도록 해 준다. 모든 위대한 이야기는 길을 떠나는 여정에서 시작되지 않던가.

우리의 생활 터전이 도시화될수록 개인은, 몸은 소외된다. 지금 당장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서보라. 끊임없이 밀리는 자동차와 사람들, 그리고 온갖 통제할 수 없는 소음들. 보통의 경우, 걷기란 일에 필요한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한 걷기, 즉 노동의 연장선일 따름이다. 안락함이라는 무거운 옷 속 갇힌 우리의 몸은 걷기의 감각을 잃어버린 걸까? 이 도시에서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걷기란 불가능해져 버린 것일까?

자동차와 기차, 비행기 또는 초고속 인터넷과 같은 '속도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걷기의 리듬은 너무나 느리고 때론 낯설기까지 하다. 북성로라는 공간도 오늘날 그런 기준에서는 불편하게 생각되기 쉽다. 건물도 낡았고, 사람도 늙었고, 산업공구도 한물간 것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커다란 함정이다. 북성로에 들어서자마자 예기치 않은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북성로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던 대구읍성의 공북문터,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지나갔다는 길, 일제강점기 최고의 번화가였을 당시 지어진 건축물, 광복 후 화가, 문인, 정치인들이 활동했다는 공간들, 공구상가들의 조화로운 디스플레이까지, 잠깐 동안에도 수많은 시간들이 내 앞을 지나간다. 차로는 5분이면 지나갈 수 있지만, 걷는 이에겐 30분도 걸릴 수 있고 1시간도 걸릴 수 있는 깊이와 폭을 지니고 있다.

이제 이곳에서 그 시간의 리듬을 포착하는 것은 각자 걷는 이들의 몫이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끼는 만큼 각자의 걷기 리듬이 생겨난다. 이러한 걷기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은 삶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걷기를 통해 낯선 것들과 조우하며 자신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새로운 꿈을 꾸며 비로소 또 다른 미래를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에.

인간다운 삶, 그것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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