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고통 견디는 언니 모습, 가슴 아려…
김소원(가명'34) 씨는 '그날'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지난해 7월 한 살 터울인 언니 김지원(가명'35) 씨가 희귀 뇌종양인 척삭종 제거 수술을 받고 한 달 동안 꼼짝도 못하고 고통을 견디던 때였다. 마약성 진통제를 여러 번 맞아도 통증이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언니는 아프다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오히려 언니는 소원 씨를 보며 웃었다.
"언니는 본인 몸이 예전처럼 돌아오지 못할 걸 알면서도 내 손을 잡고 '소원아 내가 다 나으면 같이 풀빵 장사를 하자. 그렇게 열심히 행복하게 살자'고 했어요."
그날, 웃는 언니를 보며 소원 씨는 울었다. 이제 소원 씨는 울지 않으려고 한다. 언니가 웃는데 자신이 울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언니를 생각하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가슴 언저리가 절절 끓어요. 그럴 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아요." 아무리 입술을 깨물어봐도 결국 그날처럼 소원 씨의 두 볼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껏 나를 살게 한 언니
소원 씨가 여섯 살 때 부모님과 헤어지고 할머니 손에 맡겨진 후부터 언니는 소원 씨의 부모이자 형제였고, 친구였다. 할머니집과 고모집을 전전하며 엄마 아빠가 그리울 때 소원 씨를 안아준 것도 언니였다. 초등학교 때 다시 같이 살게 된 엄마가 손찌검할 때 소원 씨를 지켜준 것도 언니였다. 중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일을 시작한 언니는 월급을 받으면 소원 씨의 손을 잡고 시내로 나갔다. "그 시절 언니가 사준 빨간색 코트를 아직도 갖고 있어요. 10년이 넘은 옷이지만 다섯 번도 입지 못했어요."
소원 씨가 20대부터 심한 조울증을 앓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언니가 늘 곁에 있었다. 언니는 생계를 위해 낮에는 회사 경리로 일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하면서도 틈틈이 소원 씨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아름다운 세상을 구경시켜주며 '세상에 나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언니는 스무 살이 넘은 동생을 아기 돌보듯이 소중히 했다. 소원 씨가 밥을 배불리 먹어야 숟가락을 들었고, 소원 씨를 재우고 나서야 잠을 청했다. "언니는 제게 태양이에요. 온 세상이 암흑 같은 터널인데 언니가 빛이 돼주고 앞을 볼 수 있게 해줬죠."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언니
그렇게 소원 씨를 살린 언니 지원 씨는 3년 전부터 뇌종양 중에서도 희귀 악성질환이라는 '척삭종'으로 투병 중이다. 언니는 언제부턴가 뒷목 부근이 불이 붙은 것처럼 고통을 호소했고, 병명도 모른 채 물리치료만 받다가 3년 전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척삭종 진단을 받았다. 이미 종양이 숨골부터 1, 2번 경추까지 침범한 상태였고 국립암센터에서 4개월에 걸쳐 양성자 방사선 치료도 받았다.
하지만 종양은 갈수록 커졌고 지난해 7월 최후의 수단인 제거 수술을 택했다. 지원 씨는 "안면부를 다 들어내고 입 안을 통해 종양을 제거했지만 올 들어 재발했고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했다.
4번 경추까지 번진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지원 씨는 또 수술을 받아야 한다. 지난달 초 티타늄과 엉덩이뼈를 이용해 두개골부터 4번 경추까지 고정하는 경추유합술을 받았다. 앞으로 진행될 종양 제거 수술은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술이 잘돼도 정상인으로 살 수 없다. 이미 목을 가눌 수 없게 됐고 평생 후유증으로 극심한 두통을 안고 살아야 한다. 더구나 앞으로 받을 종양 제거 수술은 신경 다발이 지나는 목을 절개하는 탓에 청력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도 지원 씨는 삶의 의지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소원 씨가 있기 때문이다. 소원 씨는 "이렇게 아프면서도 언니는 제 손을 꼭 잡고 끝까지 저를 지켜주겠대요. 그런 언니를 위해 제가 무엇인들 못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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