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를 벼랑 끝으로 내몬 남자의 참회록…『탑의 연가』

입력 2016-10-01 04:55:05

탑의 연가/이연주 지음/뿌리 출판사 펴냄

「금슬 좋기로 소문난 부부가 목장을 운영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부부는 심하게 다퉜고, 아내는 집을 나갔다. 아내가 떠나버리자 남편은 키우던 젖소를 모두 처분하고, 목장 주변에 탑을 쌓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남편이 젖소를 모두 처분하고 종일 탑 쌓는 일에 매달리는 것을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의 기도라고 생각했다. 왜냐고?

처음 그 부부가 목장을 개간할 때 그 자리에 있던 소나무 연리목을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그만 소나무가 죽어버렸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목장주의 아내가 떠나버린 배경에는 연리목의 저주가 있다고 생각했고, 남편이 그 저주를 풀기 위해 연리탑을 쌓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37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리탑을 쌓았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탑을 쌓았지만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소설가 이연주 씨가 중학생이던 시절(1965년)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는 자라는 동안 희미해지기도 했고, 때로는 의식에서 완전히 빠져나가 버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문득문득 그 이야기가 떠올랐고, 그 목장의 남자는 어째서 그토록 오랜 세월, 세상을 하직하는 날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기다렸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됐다.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는 그럴 듯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떠난 아내를 기다리며 생업을 뿌리치고 돌탑만 쌓았다는 것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은이는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를 '실재 사실'로 전제했다. 그러자면 빠진 이야기가 덧붙여져야 하고,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은 당위성을 지닐 수 있어야 했다. 지은이는 마치 호미로 땅굴을 파는 사람처럼 느린 속도로,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이야기를 꾸몄다. 그렇게 해서 앞뒤가 빈틈없이 맞아떨어지는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됐다. 아버지로부터 연리탑 이야기를 듣고 50년 넘는 세월이 흘렀고, 지은이가 매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하고도 26년이 지났다.

잘 운영하던 목장을 접고 평생 탑을 쌓는 남자의 이야기는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 여성 르포 작가가 그의 사연을 취재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한다. 취재 과정에서 르포 작가는 목장주가 쌓고 있는 탑은 떠나버린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연리탑'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죄에 대한 참회의 탑임을 알게 된다.

목장주는 사람들 눈에는 '연리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참회의 탑'을 쌓았고, 밖으로는 떠나버린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연서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눈물의 '참회록'을 쓴다.

목장주의 참회록은 이 소설의 주인공 형준에게 '자신의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사랑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한 여자의 인생을 파멸시키고도 자신은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던 남자, 이념의 우위를 믿고 한 여자를 파멸시켰으면서 자신은 따뜻한 밥, 번듯한 직장, 단란한 가정을 꾸려온 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추었던 것이다.

목장주가 쓴 긴 참회록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목장주는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서당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스승의 손녀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워낙 집안 간의 격차가 컸고, 마음으로 흠모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혼례를 앞둔 스승의 손녀가 겁탈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충격으로 자살을 기도한 아가씨를 목장주가 구해낸다. 이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마침내 부부의 연을 맺고 목장을 개간해 살아간다.

부부는 금슬이 좋았다. 그러나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아내는, 젊은 시절 자신을 겁탈했던 남자가 바로 지금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을 벼랑 끝에서 구해준 사람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바로,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간 사람임을 알게 된 것이다. 아내는 떠나버렸고, 남편은 참회의 탑을 쌓는다.」

소설의 주인공 형준은 목장주의 참회록을 통해 자신이 지은 죄를 기억해내고, 목장주에 이어 12년째 참회의 탑을 쌓고 있다. 427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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