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가듯 하늘나라 올라가리라
이만도
가슴 속 비릿한 피 다 사라지니
이 마음이 더욱더 텅 비고 밝다
아마도 내일이면 날개가 생겨
소풍 가듯 하늘나라 올라가리라
胸中葷血盡(흉중훈혈진) 此心更虛明(차심갱허명)
明日生羽翰(명일생우한) 逍遙上玉京(소요상옥경)
*원제: 九月初二日夜口占. *구점: 즉흥시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단식을 했다. 하지만 정말 죽기 위해서 단식을 한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김영삼, 김대중 등 저명인사들의 목숨을 건 단식도 결코 예외가 아니지 싶다. 한마디로 말하여 그들의 단식은 극한 상황을 타개하고 정치적 돌파구를 찾기 위해 던지는 반전 카드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단식투쟁을 한 것이지, 정말 죽기 위해 결연하게 단식을 선택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말 죽으려고 단식을 시작해서, 정말 죽었던 분도 계신다. 위의 시를 지은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1842~1910) 선생이 바로 그런 분이었다. 향산은 을사오적(乙巳五賊)의 처형을 상소했던 한말의 의병장으로서, 피비린내 나는 항일투쟁의 맨 앞줄에 서 계셨던 분이었다. 경술국치를 당하자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면서 무려 24일간이나 단식을 하여 기어이 목숨을 끊으셨다. 어쩌면 음독이나 할복자살보다도 훨씬 더 고통스러웠을 이 놀라운 죽음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고 만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죽음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던 그의 모습에서 어떤 고통이나 공포 같은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향산은 단식 소식을 듣고 날마다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과 세계와 인간에 대한 학문적인 토론을 뜨겁게 벌였다. 제자들과 경서를 강론하기도 하고, 지기들과 풍류를 즐기기도 했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그에게 알맞은 마지막 가르침을 베풀었고, 더러는 시를 읊어 감회를 담아내기도 했다. 일본 경찰이 그에게 강제로 밥을 먹이려고 했을 때, 참으로 격렬하게 분노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온화하고 고요한 표정을 최후의 순간까지 잃지 않았다. 그것은 결코 곡기를 끊고 초라하게 죽어가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먼 훗날을 위해 감동의 씨를 뿌리는 위대한 교육자의 모습이었다.
향산의 이와 같은 모습은 단식 18일째 되던 날 밤에 즉흥적으로 지어 읊었다는 위의 시에서도 그야말로 유감없이 드러나 있다. 오랜 단식으로 가슴속의 비리던 피 죄다 사라지자, 텅 빈 마음이 더욱더 훤하게 밝아온다. 이러다가 내일쯤엔 소풍을 가듯이 슬슬 날아올라 저 아득한 하늘나라, 그 초월적 신선 세계로 비상의 날개를 펼칠 것만 같다.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 온갖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청정한 정신 경계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엿새 뒤 향산이 조용히 눈을 감자, 그의 제자이자 의병장이었던 벽산(碧山) 김도현(金道鉉)이 달려왔다. 그때 벽산은 이 세상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사연이 긴 제문을 지어 스승의 영전에 올렸다고 한다. 그 제문의 전문은 단 한 글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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