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잘 알고 지내는 한의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용은 2학기 개학을 앞두고 한 교사가 병원을 찾아와 허리가 아프다며 진단서를 떼 달라는 것이다. 이 교사는 지난봄에 병가를 냈다면서 이번에는 휴직을 위해 필요하다고 4개월짜리 진단서를 요구했다. 한의원 원장은 4개월 진단이 나오려면 식물인간 수준이 돼야 하고 그것도 한꺼번에 장기간의 진단서를 발급할 수 없다고 하자, 그 교사는 "다른 데는 다 떼 준다는데 여기서는 왜 그러냐?"고 태연히 말하더란다. 원장은 기가 막혀서 환자를 돌려보냈지만 불편한 여운이 오래 남았다고 했다. 아울러 방학 막바지에 이런 진단서 발급 요청이 많다고 전했다. 이 교사의 경우 4개월짜리 진단서가 필요했던 것은 아마 여름방학을 보내고 난 뒤 2학기 개학과 동시에 겨울방학 전까지 휴직하려는 계산일 것이다.
교사는 1년에 최대 60일간 병가를 낼 수 있다. 병가 사용은 교사뿐만 아니라 공무원 모두에게 해당되는 권리다. 병가는 기간 동안 해당 급여가 100% 나오고, 이후에 가능한 병 휴직은 급여의 70%가 보장된다. 교단에서 혹은 공무 중에 병마가 찾아오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면 치료와 재활이 충분하게 이뤄져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병가와 병 휴직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교사가 적지 않다고 한다. 합법적으로 보장된 병가와 연가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연중 절반은 학교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병 휴직 또는 가족을 돌보는 간병휴직까지 더해진다면 기간제 교사보다 근무를 적게 하는 정규 교사가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교사가 병가를 반복해서 사용한다는 점이다.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연간 30일 이상 병가를 사용한 교사가 최근 6년 동안 2천3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매년 400명 정도의 교사가 한 달 이상 아파서 쉬는 셈이고, 이는 대구 전체 교원의 2%가량이다. 여기엔 중복 사용자가 포함돼 있다. 일각에선 교사들이 격무에 시달리기 때문에 병가가 많다고 할 수 있겠지만, 최대 1년까지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인 자율 연수 휴직은 현재 사용자가 50명 남짓이다. 10년 이상 교육 경력이라는 자격이 붙지만 자율 연수 휴직은 무급이기 때문에 적극적 이용을 하지 않는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실제로 연간 60일 병가 사용이 10년 재직 기간 동안 7번이나 되는 교사도 있다고 한다. 이를 보다 못한 교장이 "학생들도 좀 생각해주셔야죠?"라고 말하니 "나의 법적 권리인데 왜 그러냐"고 맞받아치더란다.
이들은 병가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꺼내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학기 초 담임을 맡기 싫어서, 업무 분장에서 불만일 경우 진단서를 제출하고 출근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학교장은 어쩔 수가 없다. 특정 시기에 몰려 있는 업무를 맡겠다고 자청한 교사가 평소에는 잘 지내다 그 시기가 닥치자 병가를 내도 속수무책이다.
올 초 어떤 학교에서 담임 배정을 하자마자 담임교사가 진단서를 제출하고 나오지 않아 다른 교사에게 임시 담임을 맡겼다. 그랬더니 이 교사도 '병가 모드'로 돌입했다. 한 달도 안 돼 담임이 세 번이나 바뀌게 된 것이다.
교사가 갑작스레 출근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입시 성공엔 담임 복도 있어야 한다는 데, 이를 지켜보는 학부모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학생들도 보고 듣는다. 과연 학생들이 이런 선생님의 병가를 보면서 진심으로 아픔을 위로하고 쾌유를 빌겠는가?
어디나 누워서 자라는 콩나물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시루가 학교여서는 안 된다. 그들이 주장하는 권리로 인해 학생과 동료 교사의 다른 권리가 침해당한다면 병가와 연가 사용은 '소극적 권리'여야 한다.
교사들 사회에서도 '문제 교사'가 누군지 다 알고 있다. 조직에서 제재 수단이 없다고 한다. 혹시 그들이 승진을 포기할 수는 있지만 학교에 머무르는 한 교사의 양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 운 없이 그 교사에게 배정된 학생에겐 인생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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