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팔공산 승시(僧市)

입력 2016-09-22 04:55:02

가을의 서정이 깊어가는 팔공산에 10월이면, '세상보다 더 큰 장터'라는 특별한 시장인 승시가 열린다. 이름하여 산중전통장터인 승시(僧市)로 스님들이 수행생활에 필요한 물품, 차류, 승복 등 불교용품을 교환하는 장터를 곳곳에 두었던 고려 이래의 전통을 현대에 계승발전한 시장이다.

원래 스님들은 재가자들의 공양을 받아 일상과 수행생활을 영위하였기에 청빈과 무소유를 기본으로 하는 스님과 시장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렇기에 승시는 세계불교사에 참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나라만의 귀중한 문화자산이다. 따라서 승시의 참된 의미는 물물교환 등 단순히 사고, 파는 경제적 행위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스님들의 수행생활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불교수행의 안내그림인 심우도(尋牛圖)를 보면 마지막 수행관문을 표현한 입전수수(入廛垂手)라는 말이 있다. 중생제도를 위해 저잣거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저잣거리를 상징하는 것은 곧 시장이다. 수수가 상징하는 의미는 심리적으로 이미 바깥경계를 초월한 안심입명이라 할 수 있으며, 일없는 무위의 경계를 그렇게 그린 것이다. 스님이 나무를 하더라도 나무만 한다면 나무꾼이요, 도리를 잊고 장사만 한다면 상인에 불과하지만 그 무엇을 하여도 수행자의 본분을 잊지 않을 때 비로소 수행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스님들의 저자인 승시는 모든 인간 삶의 질곡과 희비가 점철되어 있는 장터에서 그간의 수행 정도를 시험하고 완성시켜나가는 현장으로, 가장 빨리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공간, 복과 덕을 함께 나누는 수행도량인 것이다. 여기에서 시장과 스님들의 수행생활이 만나고 함께 어울리게 된다.

팔공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불교성지이자, 민족의 영산이다. 다행히도 동화사와 대구시가 기록전승과 구전을 바탕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화자산인 승시를 발굴하고, 이를 관광자원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대단히 고맙고 행복한 일이다.

승시를 통해 팔공산의 역사와 불교적 문화자산을 널리 알리는 일은 오롯이 우리들의 몫이다. 승시는 바루공양으로 대표되는 음식문화와 차 문화, 청빈과 무소유를 상징하는 스님들의 수행생활, 천년을 이어온 불교건축과 미술, 의례 등을 직접 보고, 만나고, 느끼고, 즐기고, 나누는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는 축제의 장이다. 한 번쯤 팔공산 순환길을 스토리텔링하여 승시옛길이라 이름하고, 걸망 메고 걸어보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기회도 갖자. 순환길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신라 이래 명찰이자 평화와 통일기원도량인 동화사, 전쟁 말고 평화를 외쳤던 초조대장경 봉안지이자 선덕여왕의 행차지인 부인사, 영조대왕의 원찰인 파계사, 지장보살의 영험이 전하는 송림사와 북지장사, 제2석굴암을 비롯한 수백의 불교사찰과 천제사직단을 만날 수 있다.

자동차 길이 아니라 팔공산을 사람을 위한, 생명을 위한 길로 만들어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생태힐링의 보고로 만드는 아이디어도 공유해 보는 것은 어떨까?

특히, 올해 10월 1일부터 5일까지 열리는 승시가 팔공산의 역사와 문화자산을 배경으로 다 함께 즐기고, 몸으로 감동하고 마음으로 행복한 야단법석 한마당 축제가 되길 빌어본다. 불교문화와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풍성한 볼거리, 다양한 체험현장, 스님들과의 힐링차미팅, 법고대회, 스님씨름대회, 불교의례와 전통음악이 어우러진 공연, 숲길 속에서 펼쳐지는 음악회 등 승시가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지구촌 축제가 되어 세세연년 이어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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