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날 노래함
정도전
한가위가 올 때마다 보름달 떠도
오늘 밤 저 환한 달 가장 애틋해
천지간 바람 이슬 고요도 한데
가없는 이어진 건 바다 산일세
고향의 가족들도 저 달을 보고
아마도 온 집안이 잠 못 이루리
뉘 알까, 이쪽저쪽 그리는 마음
예나 제나 할 것 없이 아득한 것을
歲歲中秋月(세세중추월) 今宵最可憐(금소최가련)
一天風露寂(일천풍로적) 萬里海山連(만리해산련)
故國應同見(고국응동견) 渾家想未眠(혼가상미면)
誰知相憶意(수지상억의) 兩地各茫然(양지각망연)
*원제: 中秋歌(중추가)
유라시아 대륙의 거의 전역을 말발굽 소리로 뒤덮이게 했던 원(元)나라도 마침내 저물던 무렵이다. 34세의 한창나이였던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1342~1398)은 전남 나주를 향해 터벅터벅 유배길에 오르고 있었다. 지는 태양 원나라보다는 떠오르는 태양인 명(明)나라와 가까이 지내는 것이 국익에 절대 유리하다는, 아주 당연한 주장을 한 것이 귀양을 가야 하는 사유였다. 삼봉은 2년 남짓 동안 나주의 농민들과 허심탄회하게 소통하면서 이 땅의 구체적인 현실에 대해 새로운 인식의 눈을 떴다. 그것이 훗날 역성혁명의 개혁정치로 이어지는 원초적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유배 체험은 한국사 전체를 크게 바꿔놓은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풍운아(風雲兒) 삼봉도 쓸쓸한 유배자의 절대 고독만은 어찌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러한 상황은 모두 다섯 집이 살고 있었던 적막하기 짝이 없는 유배지에서 한가위를 맞아 지은 위의 시에서도 아주 약여하게 드러나고 있다. 보다시피 작중화자는 지금 팔월 보름달을 쳐다보고 있다. 한가위가 되면 둥글고 환한 달이 떠오르는 것은 해마다 반복되는 연례행사다. 하지만 유독 오늘 밤에 두둥실 떠오른 저 달은 정말 유달리도 애틋하다. 왜 그럴까? 유배지에서 뜻깊은 명절에 혼자 쳐다보는 달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쯤 고향의 가족들도 저 달을 바라보고 있을 게다. 내가 달을 보며 그 가족들을 생각하듯이 가족들도 달을 보며 내 생각으로 잠을 통 못 이루고 있을 게다. 그러다 보니 바라보는 달빛이 애틋하기 싫어도 참 애틋하지 않을 수가 없다. 휘영청 배부른 고향 달이 아니라 휘영청 배가 고픈 유배지의 달!
"나 지금 달을 보오, 그대도 달을 보소/ 산 너머 있다 해도 둥근 달을 함께 보면/ 겸상해 밥을 먹으며 마주 앉아 있는 거라."(이종문, [둥근달을 함께 보면]) 올해 한가위에도 삼봉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 품에 안기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리라. 그런 분들은 팔월 한가위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를 때, 둥근 달을 함께 보도록 하라. 서로의 눈빛이 저 환한 거울에 반사되어 서로의 눈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겸상을 해서 밥을 먹으며 마주 앉아 있는 듯 한결 푸근한 느낌이 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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