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80%는 간단히 치료 시골도 1차 병원 필요해요"
"울진 사람이 표준말을 쓰니 이상하죠? 그래도 10년 넘게 지내니 말귀는 다 알아들어요."
이종규(67) 연세가정의학과 원장은 경북 울진군 평해읍을 홀로 지키는 의사다. 그래서 매일 바쁘다. 시간을 내기 어려워 점심시간을 이용해 칼국수를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려는 찰나, 벌에 쏘인 환자가 찾아와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병원 문을 나섰다. 급히 환자 상태를 확인한 이 원장은 뛰어나와 악수를 청했다. "너무 바빠서 미안해요. 환자가 먼저이니 기자 양반이 이해해줘요."
◆미소와 친절로 스며든 외지인
평해읍에서 '연세의원 원장'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는 영락없는 외지인이다. 1950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의과대를 졸업하고 개원해 40대까지 서울에 살았다. 지난 2004년 오십 줄에 들어선 그가 생면부지인 평해읍으로 들어온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1994년부터 10년간 외국을 떠돌다 한국으로 돌아와 땡전 한 푼 없이 개원을 하려니 어디 문 열 데가 있나. 두 아들이 대학을 다니는 대구 인근의 시골을 찾다 보니 여기가 딱이더이다."
이 원장은 "칼 대는 것 빼고는 자신 있다"고 했다.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전체 질병의 80%라고 해요. 시골에 1차 의료기관이 꼭 있어야 하는 이유죠."
실력과 친절을 겸비한 이 원장에게 의외의 장벽은 '사투리'였다.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들이 증상을 말해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 한동안 동네 토박이인 사무장이 옆에서 '통역'을 해줘야 할 정도였다. 억센 경상도 억양에 괜히 주눅이 드는 날도 많았다.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와 이리 안 낫노!' 하며 진료실에 들어오면 내가 뭘 실수했나 싶어 오금이 저렸어요. 하하."
이방인 취급을 받던 이 원장은 서글서글한 미소와 친절로 평해읍에 스며들었다. 개원 후 8개월간 친구와 함께 병원을 운영하면서 그는 마을 곳곳으로 왕진을 나갔다. 당뇨 등 만성질환이 있는 환자를 살폈고, 아무 집이나 대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아픈 데가 없는지 묻기도 했다.
그렇게 쌓은 정은 오롯이 이 원장에 대한 신뢰로 자리 잡았다. "길을 걷다 보면 새참을 먹다가도 아는 체를 해주시고, 장날이면 나물 팔고 남은 걸 병원으로 가져오세요. 어느 날은 500원짜리 껌 한 통을 사들고 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어찌나 뭉클하던지…."
◆"나는 엉덩이가 가벼운 남자"
이 원장은 자칭 '엉덩이가 가벼운 남자'다. 10년 동안 해외에서 의료봉사를 했고, 지금도 자신이 도움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 이 원장은 지난 1994년 정부 파견의사로 미얀마로 떠났고, 2년 후엔 뉴질랜드에 정착했다. 느긋한 삶을 즐기던 이 원장을 일깨운 건 동네 꼬마였다.
"마당에서 비행기를 갖고 놀던 꼬마가 '지금 아프가니스탄에 전쟁이 나서 사람들이 굶어 죽는대요. 비행기로 음식을 전달해주려고요'라고 하더군요. 순간 야구방망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그 길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간 이 원장은 전쟁의 참상 속에서 생명을 구했다. 팔이 절단돼 실려온 임산부의 아기를 받았고,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의 눈을 감겨줬다. 이후에도 태풍 '루사'의 직격탄을 맞은 김해시 한림면과 지진으로 무너진 네팔을 찾았다. 지난 2012년부터는 매년 한 차례 네팔을 찾아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여러 곳을 떠돌지만 이 원장에게 마음의 고향은 역시 평해다. 이 원장은 "은퇴하면 내가 요새 위문가는 동네 양로원에 들어갈 거예요"라며 껄껄 웃었다.
♣이종규 원장
울진 연세가정의학과 원장/충북 제천/서울 경동고/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가정의학과 전문의 취득/대한가정의학회 정회원/대한노인병학회 정회원/대한노인의학회 정회원/대한불임학회 정회원/대한일차진료학회 정회원/2014년 대한민국 환경'사회봉사 대상 수상/2014년 자랑스러운 한국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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