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울림] 사랑하는 젊은이들로부터 구하는 용서

입력 2016-09-09 04:55:02

영남대학교 국제법 박사. 국방대학교 고위공직자 안보과정 수료. 전 국제법평론회 회장. 전 영남대 법과대학 학장
영남대학교 국제법 박사. 국방대학교 고위공직자 안보과정 수료. 전 국제법평론회 회장. 전 영남대 법과대학 학장

취업 문턱 넘지 못한 청년, 추석은 고통

미래 제대로 준비 못한 선배 세대 책임

공부 잘 하기보다 꿈을 갖고 장점 살려

'존경받는' '책임 있는' 직업인 돼야

곧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이다. 추석이란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고 이해되기도 하는데, 옛날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이 서로 만나 하루를 행복하게 즐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뒤돌아보면 국가 경제가 급격히 팽창하던 시기의 추석은, 초등학교 학생의 소풍 전날과도 같이, 설렘으로 가득 채워진 그야말로 행복한 그리고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저성장의 굴레에 빠져든 오늘날의 추석은 그 의미가 많이 변질되었다. 특히 사회로의 진출을 앞둔 젊은이들이 체감하는 변화 정도는 훨씬 더 크다. 어쩌면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에서 일가친척을 만난다는 것이 고통의 시간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 고용률은 수도권이 45.3%, 비수도권이 39.6%라고 한다. 직업 구하기가 엄청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인해 젊은이들의 삶 자체가 더 빡빡해지고, 어쩌면 무기력해지기조차 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우리의 사랑하는 아들, 딸들에게 있어서 추석이란 비켜가고 싶은 날이 되어 버렸다.

젊은이들은 가정은 물론이고 한 나라의 미래 운명을 결정할 보배들이다. 그들이 행복하고 열정적일 때 그 나라의 미래 운명도 밝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취업을 걱정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평소 많이 안쓰럽고 미안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러한 미안한 심정은 똑같다. 우리의 사랑하는 아들, 딸들에게 평소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한다.

"이 나라가 이렇게 빡빡해지고 무기력하게 된 책임이 나에게 있음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한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젊은이들이 그러한 아픔을 안고 살아가게 한 절반 이상의 책임이 우리들 선배 세대가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생겨난 일임을 용서받고자 한다. 기성세대 가운데 어떤 자가 더 큰 책임이 있는지는 따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선배 세대로서 용서받을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것이 첫 번째이다.

두 번째로는 젊은이들이 미래의 변화에 대해 너무 안달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 눈앞에 닥친 변화라는 것은 두려운 위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을 갖는 축복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느냐에 따라, 각 개인의 삶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고, 곧 그것은 이 나라를 세계 속의 '일등국가'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꿈을 가져야 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 노력의 결실로서 직업을 갖게 되면 그때부터는 '존경받는' 직업인이 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너희들 스스로의 몫임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꿈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때만 가능하다. 오늘날 세상은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양해되는 사회'가 된 지 오래됐다. 자신이 가진 잠재 능력은 철저히 무시되고 그냥 공부 잘하는 순서대로 대우되곤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젊은이들은 자신의 장점을 찾지 못하고, 그냥 언제부턴가 '나는 공부를 못해'라는 자신만의 프레임에 갇혀 자신의 장점보다는 단점만을 보는 데 스스로 익숙해져 있다.

하루에 10가지씩 자신의 장점을 찾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장점을 찾으면 자존감이 살아나고, 그러면 꿈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의 모든 젊은이들은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해야 할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제부터는 끊임없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노력의 결실로서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모든 인생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어쩌면 가장 힘든 일, 즉 그 직업 앞에 멋진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존경받는' '약자를 배려하는' '책임감 있는' '훌륭한' '멋진' '좋은' 등등 붙일 수 있는 수식어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 직업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백지에 붓과 물감으로써 어떤 그림을 그릴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젊은이들 각자의 자유이다. 그러나 그려진 인생 그림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각자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젊은이가 최고의 명작을 그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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