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으뜸 의사] 이승현 삼성안과의원 원장

입력 2016-09-07 04:55:02

환자와 공감하는 게 치료…첨단의학은 더 그렇죠

이승현 원장 대구 삼성안과 원장/ 오성고/ 계명대 동산병원 안과 전문의/ 미국 시력교정학회 정회원/ 미국백내장학회 정회원/ 1997년 대구경북 최초 라섹수술 시술, 1999년 지역 최초 콘택트렌즈 이식술 시술/ 미국 샌디에이고 Michael Gordon Vision Institute 연수/ 미국 위스콘신주 Dean
이승현 원장 대구 삼성안과 원장/ 오성고/ 계명대 동산병원 안과 전문의/ 미국 시력교정학회 정회원/ 미국백내장학회 정회원/ 1997년 대구경북 최초 라섹수술 시술, 1999년 지역 최초 콘택트렌즈 이식술 시술/ 미국 샌디에이고 Michael Gordon Vision Institute 연수/ 미국 위스콘신주 Dean's Hospital Eye Center 연수

아플 때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 동네의원이다. 그곳에서 환자들을 맞는 의사들 역시 낮은 문턱으로 환자들을 맞으며 주민들의 건강을 돌본다. 그들 중에는 의원급 의료기관인데도 힘써 의료기술 역량을 높이거나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이들이 있다.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나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우리 동네에서 함께 숨 쉬는 의사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난 2일 오후 대구 중구 공평동 삼성안과의원. 진료실 바깥으로 간간이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들어간 50대 남성도, 찡그리고 들어간 60대 여성도 진료실을 나설 때 표정은 한껏 달라져 있었다.

"환자가 마음이 즐겁고 편하면 치료가 빨리 돼요. 눈은 더 심한 것 같아요. 안구건조증이 있는 환자에게 열흘 휴가 내고 산속 좋은 데 가서 쉬다가 오라고 해요. 그러면 거의 다 나아요. 치료가 그런 거죠. 환자와 의사소통하고, 환자에게 공감하는 게 치료예요. 첨단의학을 할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이승현 원장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거침없는 말투에 간간이 터지는 함박웃음. 그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가 개원한 건 지난 1997년. 무일푼으로 시작했다는 병원이 빠르게 자리를 잡자, 그는 이듬해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의사가 없는 농촌마을에서 무료진료를 하는 무의촌 의료봉사였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환자 가운데 개척교회 목사 몇몇의 소개를 받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평일에는 진료를 하고, 주말에는 무의촌 봉사를 하는 날이 계속됐다. 고령군 덕곡면을 시작으로 청송, 군위, 멀리 통영 사량도까지 봉사를 다녔다.

특히 경남 합천 원폭피해자마을에서 시력을 잃어가는 원폭 피해자들과는 아픔을 나눴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병원으로 데려와 수술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밝은 세상을 되찾은 이들이 수백여 명에 이른다. 현재 무의촌 진료 봉사는 거의 중단된 상태다. "요즘 안과의사가 없는 시골이 없어요. 다른 개원의가 있는데 제가 무료 진료를 할 수는 없잖아요. 그 사람들도 먹고살아야죠."

그가 내놓은 장학금도 벌써 4억8천만원에 이른다. 장학재단 설립을 포기하고 2001년부터 매년 3천만원씩 모교인 계명대 의과대에 기부해왔다. 이 돈은 장학금과 교수들의 연구기금, 각종 기자재 구입비 등으로 사용된다.

"이게 보통 빚보다 더 빚이에요. 지난 5월에는 당장 급하게 장학금을 달라고 해서 마이너스 통장에서 빼서 줬어요. 그래도 20년 동안 주기로 말을 했으니 계속 해야죠. 말 한마디라도 하면 지켜야 하니까요."

그는 "기록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봉사를 했으면 그만이지, 흔적을 남길 필요가 뭐 있느냐는 식이다. 그가 지난 2012년 국내 최고 권위의 의료봉사상인 '보령의료봉사상'을 수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최 측이 봉사활동 사진을 달라고 했을 때 그가 가진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결국 주최 측이 군청과 보건소를 뒤져 1시간 분량의 슬라이드를 채울 사진을 찾아냈을 정도였다.

그의 집은 3대째 의사 집안이다. 아버지는 북구 침산동에서 작은 외과를 했고, 딸은 계명대 동산병원에서 안과 레지던트 2년 차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고난도 수술에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안내렌즈삽입술과 라섹수술 등을 지역 최초로 시행했고, 지금은 노안교정수술 등 어렵고 위험한 수술에 집중하고 있다. 위험 부담 탓에 7년 전에는 고난도 수술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내 삶은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에 다시 메스를 잡았다. 매년 두 차례씩 미국과 유럽에서 열리는 학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그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고 했다. 취미인 모형 항공기(드론)와 자동차 레이싱, 미술작품 수집 등도 동호인 수준을 뛰어넘었다.

그는 "앞으로 어떤 봉사활동을 할지 정해진 게 전혀 없다"고 했다. "거창하게 뭘 하겠다고 생각한 건 없어요. 봉사도 도움이 되겠다 싶으면 즉흥적으로 한 것이고요. 다만 말을 앞세우지 않는 것. 약속하면 끝까지 지켜야죠.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사는 게 제일 좋은 것 아니겠어요?"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