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이 '통일의 꽃', 개인 임수경으로 마주 앉다

입력 2016-09-03 04:55:03

임수경 스토리/임수경'지승호 지음/휴먼앤북스 펴냄

올여름, 한국은 무더위만큼이나 뜨거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으로 전국이 들썩였다. 정부가 사드 배치를 추진하는 동안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남북의 긴장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임수경은 누구보다 남북 관계 경색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다.

임수경은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로 참여해 46일 동안 북한에 머물다가 판문점을 통해 걸어서 남으로 귀환한 최초의 민간인이다. 귀환 직후 국가안전기획부의 조상를 받고, 수감 3년 4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이후 오랜 시간 공부하고 강의하던 그는, 지난 19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가 되어 4년간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살았다.

인터뷰어 지승호가 풀어낸 '임수경 스토리'는 '통일의 꽃'으로 불리며 시대의 아이콘이 된 동시에, 감당하기 힘든 고뇌를 짊어져야 했던 임수경의 인생을 대담 형식으로 담고 있다. 더불어 임수경의 슬픈 가족사를 통해 내면에 자리 잡은 상실감을 보여준다.

책은 임수경의 가족사와 성장기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았다. 통일운동과 북한 체류 이야기도 있지만 워낙 개인적인 소회를 많이 담고 있어 책을 읽고 난 독자들은 "임수경하고 친해진 느낌이 든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실제 그와 친한 사람들조차 "네가 이렇게 살아온지 몰랐다"고 얘기할 정도다. 이에 대해 임수경은 "공인 임수경은 상처투성이로 살았고 그 상처조차 비난받을 때가 많았다. 부끄럽지만 책을 쓰는 시간은 그런 나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임수경의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은 경찰로 6'25 때 인민재판을 받고 돌아가셨다. 임수경의 부모님은 전라남도 해남 출신이며, 임수경에게는 친오빠 외에 이복 오빠가 하나 있다. 하지만 임수경이 그 오빠가 이복 오빠인 줄 모를 만큼 엄마는 남매를 똑같이 대했다. 임수경은 여러 남매 중에서도 이복 오빠와 가장 가까웠고, 그 오빠는 대학 재학 중 군에 입대했다가 의문사했다. 이 사건은 임수경이 운동권에 발을 들이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많이 알려져 있듯 임수경은 아홉 살 난 아들을 먼저 하늘로 보낸 쓰라린 아픔을 갖고 있다.

임수경의 아버지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기자 생활을 하다가 문교부 대변인, 서울지하철공사 이사로 퇴직했다. 임수경은 자신의 북한 방문이 아버지의 삶에도 그림자를 드리웠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임수경의 인생에는 상실과 통증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담담한 얼굴로 미래를 이야기한다. "인간은 상실 속에서 변화하고 성장하지 않나. 아직 내 몸의 가시가 빠져나갔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열심히 화해와 용서를 생각한다"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본인은 종북도 아니고 이념이나 사상에 몰입하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물렁이 허당에 가깝다며 웃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은 지금, 임수경은 당장 필요한 것은 통일이 아니라 교류라고 말한다. 경의선을 이어서 북으로 진출하는 것이 우리 경제의 탈출구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내수가 포화 상태고 북한은 발전이 멈춘 사회라고 설명했다.

그는 "굳이 통일이 안 되면 어떤가? 일단 교류를 먼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 붕괴론을 얘기하지만 북한은 너무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어 붕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진단한다. 북한을 변화시키려면 남북의 민간단체와 개인이 자주 만나 교류가 활발해져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그래야 우리가 살고 한반도가 산다는 것이다.

많은 나라들이 하나의 언어, 하나의 핏줄을 가진 남과 북이 통일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큰 에너지를 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남과 북의 소통이 중요하다. 이 점에서 그의 희망은 또렷해진다.

"현재 젊은 세대는 북한에 대한 편견이나 전쟁에 대한 상처가 없는 세대 아닌가? 비록 젊은이들이 삶에 지쳐 있지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남북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젊은 세대가 한반도를 넘어 중국으로, 시베리아로, 유럽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나라는 아시아 대륙의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의 관문이 될 것이다. 굴곡지게 살아온 개인 '임수경'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240쪽, 1만3천원.

▨ 임수경은

임수경은 한국외국어대학교 4학년이던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로 베를린을 경유, 북한에 들어가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다. 46일간 북한에 머문 그는 분단 이후 걸어서 판문점을 통과한 최초의 민간인이 되었다.

고교 시절 늘 따랐던 오빠의 죽음을 겪었고, 이를 계기로 운동권 대학생이 됐다. '통일의 꽃'으로 불렸던 20대의 여자 대학생은 이후 19대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을 하지만 종북세력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임수경 스토리'는 인간 임수경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이다. 임수경은 이 책 외에 2003년 8월 어린이 책 '참 좋다 통일세상'(황소걸음)을 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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