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통신] 폭탄사 '119'로 변한 까닭

입력 2016-09-02 04:55:02

최근 세종시 공직사회 술자리에서 유행하던 폭탄사가 있다. '대도무문'이다. 영화 '명량'에서 일본군 수장이 '정명가도'를 외치며 내걸었던 슬로건이 아니다. '대리운전 도착했다. 이제 무너져도 문제없다'의 약자이다. 위트 있는 공직자가 얼큰하게 달아오른 술자리를 연장하기 위해 개발한 폭탄사란다.

최근 '대도무문' 폭탄사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119'가 대신하고 있다. '1가지 술로 1차만 하되, 9시까지만 마신다'를 줄인 말이다.

이 같은 변천은 김영란법(부정청탁방지법) 때문이다. 법 시행일을 앞두고 '시범 케이스'로 적발되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실제로 법 시행을 앞둔 공무원들의 최근 생활상은 크게 달라졌다. 음식값이 3만원 이상 나가는 식당의 출입을 자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추석 선물도 5만원 이상인지 일일이 검수(?)하는 경험담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김영랍법 시행 직전인 최근 모습이 가관이다. 일부 공무원들은 법 시행일인 28일 전까지 일정이 꽉 잡혀 있다. 만날 사람과 만나고 싶어 하는 인사들과 서둘러 약속하는 바람에 법 시행 전까지 '두 탕'을 뛰어야 하는 식사 자리도 적지 않다. 한 고위 공무원은 연말 송년회를 9월 중순으로 당겼다는 웃지 못할 소식도 전해진다.

본의 아니게 법망에 걸릴 경우 대비책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3만원 이상 식사를 대접받다 적발될 시 '그 자리에서 토한다'부터 '사랑하는 사이'라고 우기는 수법까지 다양하다. 사랑을 핑계 삼는 방법은 '벤츠 여검사' 사건을 빗댄 것이다.

'사랑' 운운은 미혼 공무원들에게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소개팅이나 맞선을 볼 경우 서울에서 치러지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 만난 사람을 상대로 '더치페이'를 주장하거나 3만원 상한선을 반드시 따져야 한다. 축의금 상한선 10만원도 미혼 공무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김영란법으로 대외 활동에 제약을 받을 것이란 우려 섞인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위직 중심으로는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다. 일단 접촉 자체가 줄어들어 서울을 비롯한 출장이 적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각종 회식과 접대 자리가 사라져 퇴근 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기대감도 들린다. 그야말로 '저녁이 있는 삶'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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