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물러났으나 민생은 여전히 폭염경보다. '최악의 19대' 소리를 듣고도 여전히 무위도식하는 국회와 "국회 탓"만 하는 정부가 질러놓은 폭염 탓이다. 박근혜정부와 20대 국회는 속 시원한 민생 대책도, 믿음이 가는 정치력도 내놓는 법이 없다. 있다면 민생을 불쏘시개로 한 '정치 폭염'뿐이다. 이러니 정치는 민생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올여름 전기요금 폭탄에 차라리 "비싼 요금 덕에 땀은 식히고 살았다"고 넋두리라도 해야 할 판이다.
민생은 고혈압인데도 여야는 집안 잔치로 신났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열고 추미애 의원을 대표로 뽑았다. 호남 출신 이정현 대표에 뒤질세라 첫 TK 출신, 첫 여성 대표라며 동네방네 알렸다. 그런데 국민 시선은 차갑다. 지도부 개편도, 여야의 '뭣이 중헌디'도 내년 대선과 집권이라는 사실을 국민은 잘 안다. 4'13 총선 뒷마무리와 대선 탐색전에 민생이 끼어들 자리가 있을리 없다.
민심은 총선 이후의 정국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제 도끼로 또 발등 찍은 꼴이다. 정부는 민생 문제에 무성의하다 못해 철저히 무능했다. 국회가 보여준 건 피켓에 써붙인 '민생' 두 글자뿐이다. 여야 모두 입으로는 민생을 들먹여도 민생은 고작 표흥(票興)을 돋우기 위한 구호다. 상대 목소리를 찍어누르는 추임새로 써먹었다. 국민 삶이 팍팍하든 말든 구호만 외치면 다 되는 줄 안다.
이미 성역화된 친박'친문 패거리 정치는 결국 청년 실업과 사상 최대의 가계 부채, 대우조선 사태 등을 불렀다. 사드 논란과 옥시, 폭스바겐, 전기요금 누진제 사태는 덤이다. 돈벌이라면 지옥문도 열어젖히는 자본과 집단 논리, 탐욕이 국민 목을 조르는데도 정부와 국회는 종이 방패조차 들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벌써 5년을 넘겼다. 폭스바겐은 허술한 우리 법 테두리를 기웃대며 지금도 변명거리를 찾고 있다. 10년 넘게 논의만 해온 전기요금 누진제는 민심이 폭발해도 시늉뿐이다. 혈세 잔치를 벌이고도 수천 명이 실직한 대우조선 등 무엇 하나 빠꼼한 것이 없다. 먼 산만 쳐다본 무능한 정부와 한심한 국회의 합작품이다. 그러고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콜레라와 C형 간염, 집단 식중독 사태와 관련한 당정협의에서 "기가 막힌다. 이게 도대체 나라입니까!"라며 질책했다. 질책받아야 할 사람이 질책하는 이런 황당한 상황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나마 공무원노조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참사 원인을 제공한 정부가 사과하지 않아 100만 공무원의 이름으로 대신 사과한다"고 했다. 공무원이 사죄하고 용서를 구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런데 일선 공무원만이라도 정신차렸다면, 허술한 검사제도 탓하기 전에 유혹을 뿌리치고 서류를 꼼꼼히 챙겼더라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결과적으로 정부나 국회, 공직사회 모두 민생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말이다.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水俣)시 사태는 지금 우리 정부와 국회, 공직 사회가 어떤 잘못된 전철을 밟고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교재다. 올해는 미나마타 사태에 대한 공식 조사가 시작된 지 60년이다. 미나마타 사태는 수은을 마구 흘려보낸 신일본질소주식회사가 주범이지만 일본 정부와 사회 모두 책임이 크다. 일본 정부는 미나마타 사태에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기까지 10년을 허비했다. 보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무려 40년이 걸렸다. 그 사이 수천 명이 고통 속에 죽었다.
1993년 총리가 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가 구마모토현 지사 시절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미나마타 사태 해결을 위한 환경규제법 강화와 정치 개혁에 적극 나선 인물이다. "일본은 정치 체제가 지극히 미숙하다. 정부가 모든 것을 쥐고 흔든다. 그런데 바로 발밑에 문제가 있는 줄을 모른다."
민생 문제'국민 안전에 무감각하기로 치면 열 몫은 더하는 우리 정부와 국회에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듣는 귀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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