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가 머리에 잔뜩 꽃을 달고 헉헉거리고 있었다. 뜨락의 벌통 앞에 설치한 물그릇의 물도 이미 말라버렸다. 사람이나 식물, 곤충도 40℃를 오르내리는 더위를 당해낼 재간은 없나보다.
성주에는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이 많다고 말하는 송용섭(68'성주군 초전면 문덕리) 씨는 성주 토박이다. 1968년 공무원에 임용, 초전면장과 성주군 기획감사실장(서기관)을 거쳐 퇴직한 송 씨는 대통령표창과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성주의 문화유산에는 성주향교와 회연서원, 옥천서원과 한개마을, 선석사 등이 있으며 세종대왕자태실도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송 씨는 공무원 퇴직 후 성주향교 총무, 유도회 사무국장, 담수회 사무국장 등을 맡고 보니 자연스럽게 인성 및 도덕성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서구문명이 들어온 후부터 선조들의 정신이나 우리 문화와 풍습 등이 잊혀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물론 시대 흐름은 따라가야겠지요. 그러나 선조들이 강조했던 효, 충, 이웃 간의 화합, 봉사 등은 아름다운 미풍양속입니다."
요즘 성주군이 술렁이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성주 유도회 회원들이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청와대로 가서 '상소문'을 올렸다고 한다. 사드 설치 장소로 지정한 '성산'은 군민들이 사는 곳과 너무 가깝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장소를 변경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상소문도 송 씨가 작성한 것이다.
송 씨가 사는 곳은 한옥이었다. 뒷마당으로 돌아가니 오래된 목조건물이 발길을 잡는다. 재실 '추원당'이라고 한다. 2002년도에 도문화재로 지정 받았다. 당대 명필가 한석봉이 금강산을 유람하고 적은 기행문 '유금강산권'도 가지고 있는데 이 역시 도문화재다. 송 씨는 이 내용 중 몇곳을 발췌해 현판으로 제작해 집안 곳곳에 걸어두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꺼내 보여주는 '성주의국 중수기'는 임진왜란 이후 성주의국 건물이 퇴락하자 당시 성주목사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는 의국을 보수한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저는 중수기를 지은 송익(1631~1701) 할아버지의 12대 후손입니다. 중수기는 선조의 유품일 뿐만 아니라 성주군의 옛 역사를 규명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입니다."
송 씨는 '조상을 욕보이지 않는 생활을 하자'를 신념으로 여긴다고 한다. "선조들이 이뤄 놓은 정신이나 유산을 후손이 무너뜨려서도 안 되고, 매사에 선조의 인성을 닮으려 노력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타인이 필요하다. 그 타인은 부모일 수도, 스승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다. 송용섭 씨는 그 거울을 조상으로 보고 있다. 진정 조상을 섬길 줄 아는 후손이다. 더위를 피해 국숫집으로 옮긴 자리에서 두부를 안주로 동동주를 마신다. 빈틈없어 보이는 성격이 술잔을 부딪치자 눅진해진다. 불콰하게 술이 오른 그의 얼굴에서 성주 지킴이, 성주를 사랑하는 군민의 애틋함이 보인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