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을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최근 서민들의 관심사로 '전기요금 누진제'가 떠올랐다. 당정은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는가 하면 대통령까지 나서서 폭염 속에 가시화된 '전기료 폭탄' 제거에 나서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불완전한 대응책일 뿐 아니라 추진되던 논의가 조삼모사(朝三暮四)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꾼다는 말, 못 믿겠다
정부는 지난 20년 동안 누진제 개편 카드를 꺼내다가 날씨가 선선해지면 슬그머니 없던 일로 하는 일을 반복해 왔다. 이번에도 유례없는 폭염 속에 시작된 누진제 논란이어서 기온이 떨어져 국민적 관심사가 누그러질 경우 정부도 슬그머니 발을 빼지 않을까 걱정이다.
실제로 지난 1999년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보고서에서 가정용 누진제를 완전히 폐지하자고 주장한 이래 정부마다 누진제 개편이 추진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당시 국책연구원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정부가 의뢰한 용역 보고서에서 2003년까지 누진제 완전 폐지와 산업용 전력요금 10% 인상 방안을 내놓았다. 전기료 원가 연동제 도입 등도 포함했다.
하지만 당시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서민 부담 증가와 여름용 반짝 증가 사용량 조절을 해법으로 제시하면서 누진제 유지 방침을 고수했다. 이런 기조는 지금까지도 가정용 누진제에 대한 비판을 방어하는 정부 논리로 활용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누진제 완화를 추진했다가 없던 일로 하는 것은 이후에도 반복됐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6년 8월에는 한국전력이 직접 2010년까지 누진제를 3단계로 축소할 것을 공식화했지만 정부는 고유가를 이유로 일축해 버렸다.
이명박정부 시절에도 정부가 직접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안 발표 공청회에서 가정용 누진제 단순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발표 1년 뒤 대정전(블랙아웃)이 발생하고 원자력발전소 부품 비리에 따른 전력난이 발생하자 유야무야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국정과제로 누진제 개편 방안을 포함했으나 그동안 손도 안 대고 있다가 올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리자 뒤늦게 논의가 시작됐다.
정부의 누진제 개편에 대한 수동적 입장은 그동안 미뤄왔던 이유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2006년에는 '고유가에 따른 에너지 절약'을, 2012년엔 '안정적 전력 수급'을 위해 누진제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대로 떨어지고 전력 예비율이 10% 이상으로 높아진 최근에는 "에너지 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 누진제 유지의 근거로 제시됐다.
이에 따라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최근이야말로 누진제 개편의 적기로 보인다. 한시적 땜질 처방에 그칠 게 아니라 에너지 요금 체계와 수급 정책 전반을 장기적으로 손보는 마스터플랜을 세워야 할 때이다. 일각에선 이번 기회에 불합리한 전기요금 체계 개편은 물론 미세먼지 및 온실가스 감축, 신재생에너지 육성, 에너지 취약계층 복지 강화 방안까지 종합적인 대책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개편인가
정부의 의지 부족과 함께 현재 논의되는 개편안의 또 다른 문제는 서민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당과 정부가 통합에너지바우처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누진제를 완화할 경우 에너지 소비가 많은 가구의 요금은 낮아지는 반면 에너지 소비가 적은 가구의 요금은 오히려 높아지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주택용 전기를 사용하는 2천300여만 가구 중 83.7%는 원가 이하의 요금으로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월평균 350㎾ 이하를 사용하는 약 1천930만 가구, 요금으로 환산하면 전기요금 월 5만원 이하의 가구는 원가 이하의 요금을 내고 있는 셈이다.
전기사용량에 따라 1단계부터 6단계까지 전기요금을 차등적용하는 누진제 특성상 4단계 구간 일부와 5, 6단계 구간의 전기를 사용하는 나머지 16%가 84%의 원가부족분을 채워주는 구조로 돼 있다. 이 때문에 누진제 구간을 완화할 경우 전기사용량이 많은 16%의 전기요금은 낮아지는 반면 84%의 요금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또 주택용 전기의 원가보상률을 낮추지 않으면서 누진제 구간만 완화하면 전기사용량이 많은 여름철 전기요금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어지지만 여름철을 제외한 봄'가을'겨울철 전기요금은 올라가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저소득층이다. 전기사용량이 적은 1~4단계 구간의 전기요금이 올라갈 경우 저소득층의 전기요금 부담도 같이 올라가게 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에너지바우처를 지급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겨울철 저소득층에게 지급하는 난방바우처와 달리 냉방바우처를 지급하는 것은 효과가 불분명해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철우 "안보·입법·행정 모두 경험한 유일 후보…감동 서사로 기적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