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노래/ 파블로 네루다 지음/ 고혜선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가 회고록에서 자신의 최고 역작이라고 꼽았던 '모두의 노래'(Canto General)가 국내에 처음 완역본으로 출간됐다.
'모두의 노래'는 모두 15부 252편의 시로 구성된 대서사시 작품집이다. 그에 걸맞은 험난했던 시작(詩作) 여정이 눈길을 끈다. 네루다는 시인이자 칠레의 외교관 및 정치가였다. 스페인 내전 당시 영사로 근무하다 정치적인 이유로 해임돼 귀국한 1938년부터 본격적으로 '모두의 노래' 집필에 들어갔다. 이후 파리의 난민 담당 영사를 거쳐 멕시코 총영사로 일하다 칠레로 돌아와 정치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1948년 칠레 상원의원이었던 네루다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연설로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체포령까지 내려져 도피 생활을 선택했다. 그러면서도 네루다는 시 집필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결국 그는 1949년 안데스 산맥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탈출했고,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을 두루 방문했다. 네루다는 1950년 멕시코에서 '모두의 노래'를 펴냈다. 체포령이 철회돼 그가 다시 칠레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1952년이다.
'모두의 노래'는 네루다가 이렇게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며 쓴 시집이면서, 내용상으로도 시인 생애의 전환점이 됐다. 초기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로 대표되는 주관적 시 세계, 이후 초현실주의적인 '지상의 거처 1'2'3' 시리즈로 대표되는 감상의 시 세계는 둘 다 내면세계를 다뤘다. 그런데 '모두의 노래'쯤부터 네루다의 시는 외부 세계로 향한다. 칠레인 및 라틴아메리카인으로서 자신의 뿌리를 탐구하고 인류의 정의 구현을 염원했다.
여기서 '모두의 노래'가 출간 60년이 넘게 지나서야 한국에 완역으로 소개된 이유도 드러난다. 작품의 방대함과 난해함,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자연에 대해 모르면 이해하기 힘든 점 등이 번역 및 출간의 장애 요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알려진 네루다와는 조금 다른 모습, 바로 '역사의 증인' 네루다를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이번 완역본 '모두의 노래'가 제공하는 셈이다.
이 시집은 라틴아메리카 역사서의 대안으로도 평가받는다.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역사서는 유럽의 아메리카 발견 이전 마야'아스테카'잉카 정도 문명에 대해서만 간략히 언급한 후, 유럽인의 진출 이후 시기를 상세히 기술한다. 하지만 네루다는 아메리카의 시원부터 195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격동의 현대사까지 표현한다.
네루다가 강조하는 굵직한 선이 하나 있다. 라틴아메리카 역사는 시원부터 현재까지 주체만 바뀌었을 뿐 수탈과 착취의 연장선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네루다는 아메리카의 고대부터 현재까지 곳곳에서 동시대성을 포착했다. 유럽인에게 발견되기 전 아메리카는 마야'아스테카'잉카'칩차'아라우카'과라니'카리브 등 다양한 문명을 꽃피웠다. 그러나 유럽의 대항해시대 도래 이후 이베리아 반도의 해양 강국들이 침입하면서,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삶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언어를 빼앗겼다. 조상이 물려준 언어 대신 정복자가 쓰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배워야 했다. 종교도 박탈당했다. 줄곧 섬겨온 태양신'산신'케찰코아틀 대신 하느님을 섬겨야 했다. 그리고 어제까지는 주인이었던 땅에서 노예처럼 일하며 살게 됐다.
20세기 국제적인 제3세계 독립 흐름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도 독립을 맛봤다. 그러나 민중은 여전히 백인들로 이뤄진 지배층으로부터 수탈과 멸시를 당해야 했다. 사회 지배층의 암투가 격화하면서 쿠데타가 난무했고, 이는 20세기 중반까지 이 지역의 정치적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와 경제도 여전히 종속적이었다. 독립 후 스페인 왕실의 간섭에서 벗어났지만, 자본을 앞세운 유럽 열강들과 특히 미국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냉전체제의 한 축인 미국을 등에 업은 라틴아메리카 독재자들은 더욱 강압적으로 국가를 통치했다. 그 강압의 대상은 정적은 물론이고, 체제에 반대하는 지식인 및 일반 노동자와 농민들, 그러니까 '민중'이었다.
시집 제목 '모두의 노래'에서 '모두'는 바로 민중을 가리킨다. '노래'(canto)는 고대 그리스의 '일리아드'부터 중세 독일 '니벨룽겐의 노래'와 스페인의 '시드의 노래'까지 이어지는, 작품을 쓴 시인의 '시대의 증언자' 역할을 네루다 스스로 선언한 것이다. 그래서 '모두의 노래'는 이베리아 반도의 식민지 역사를 공유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 그리고 수탈과 착취와 억압의 대상이 됐던 지구촌 모든 국가 및 민중들에게까지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다. 온전한 민중의 독립국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부단히 각성하라는 것이다. 근현대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732쪽, 2만2천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