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랭이꽃[석죽화(石竹花)]
정습명
세상 사람들 모두 붉은 모란 사랑하여
뜰 가운데 가득하게 심어놓고 가꾼다네
하지만 누가 알랴, 거친 풀 들판에도
아름다운 꽃떨기가 피어나고 있다는 걸…
그 빛깔 마을 연못 달빛 아래 투명하고
그 향기 언덕 나무 바람결에 전해오네
외딴곳 찾아오는 공자(公子)도 없으니
밭 늙은이 차지라네, 그 자태도 고운 꽃이
世愛牧丹紅(세애목단홍) 栽培滿院中(재배만원중)
誰知荒草野(수지황초야) 亦有好花叢(역유호화총)
色透村塘月(색투촌당월) 香傳隴樹風(향전농수풍)
地偏公子少(지편공자소) 嬌態屬田翁(교태속전옹)
정습명(鄭襲明: 1094~1150)이 누구시더라? 그는 영일정씨(迎日鄭氏)의 시조로서 고려전기를 대표할 만한 충신이었다. 막가파에 속하는 의종(毅宗)의 뒤를 따라다니며 거침없는 충언을 퍼붓다가, 끝내 의견이 수용되지 않자 절망한 나머지 독배를 들고 자결하였다. 그가 독배를 든 지 17년 뒤인 1167년 어느 날이었다. 의종이 정치 현안을 내팽개치고 달령다원(獺嶺茶院)까지 말을 타고 달려가 다원 기둥에 혼자 기대서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정습명이 만약 살아 있었다면 내가 어떻게 이처럼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가 있었겠는가." 정습명의 충언이 도대체 얼마나 집요했으면 의종이 이런 말을 했겠는가. 그것도 사후 17년 뒤에.
실로 보기 드문 충신이 남긴 이 한시에서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란과 패랭이꽃의 대조적 면모다. 다 알다시피 모란은 정원에서 가꾸는 탐스럽고 화려한 꽃으로 부귀영화의 상징이다. 반면에 패랭이꽃은 거친 초야에서 저 혼자 곱게 피었다가 저 혼자 쓸쓸하게 지는 변방과 소외의 상징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둘의 관계는 금수저와 흙수저의 관계다.
중요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금수저로 향하고 있을 때, 시인은 흙수저에 대해 참 애틋한 사랑과 연민을 토로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문벌귀족 사회에서 머나먼 변방 향리의 아들로 태어난 그 자신이 바로 패랭이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실상 패랭이꽃을 통해 자기 자신의 신분적 비애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정습명이 살았던 시대는 시의 힘이 더할 나위 없이 막강했던 때! 그는 이 한 수의 시가 몰고 온 난데없는 행운으로 인해 개천에서 난 용이 되었다. 임금이 우연히 대궐의 문지기가 읊조리고 있는 이 빼어난 시를 보고 깜짝 놀라서 곧바로 그를 모두가 선망하는 옥당(玉堂) 벼슬에 임명하였고, 그로부터 그는 출세가도를 내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출세가도의 종착역에 정말 뜻밖에도 독배가 기다리고 있었다니, 어디로 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럭비공 같은 인생이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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