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헬조선과 골든타임

입력 2016-08-19 04:55:06

요즘 누리꾼 용어로 미국은 '천조국'이다. 국방비가 1천조원이어서 그렇다는데 따져보면 '천조'와는 거리가 있다. 2015년 미국 국방비는 5천771억달러(약 630조원)다. 이보다는 안정된 정치 시스템, 풍부한 자원, 3억 명이 넘는 인구 등 최강국의 요건을 갖췄다는 차원에서 하늘이 돕는 나라(天助國)가 더 설득력 있다. 일본은 다분히 비하하는 투의 '성(性)진국'으로 불린다. 중국의 별칭인 '대륙'에는 각종 사고나 범죄마저 스케일이 크고 '황당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녹아 있다.

최근 청년들 입에 '헬조선' '개한민국' '흙수저'와 같은 용어가 자주 오르내린다. 살기가 어려워 지옥 같다거나 사회지도층 꼴이 개만도 못하다는 차원에서 나온 말이다. 높은 청년 실업률과 양극화, 부정부패, 갑질 등 부정적인 요소들이 뒤엉킨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헬조선과 같은 자기 비하와 비관, 불신과 증오는 잘못된 풍조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새누리당이 즉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민심에 캄캄한 대통령도 그렇지만 설레발부터 치는 여당도 이해 불가다. 헬조선은 돈과 권력 등 '빽'만 믿고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정치권과 재벌, 고위 공직자 등 우리 사회 1%가 탄생시킨 괴물이다. 흉흉한 민심에 제 다리 밑부터 살필 생각은 않고 무슨 원인과 대책을 찾겠다는 건지 참 우습다.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때 열흘을 넘겨 극적으로 구조된 생존자들이 화제였다. 1천 명이 훨씬 넘는 사상자를 낸 최악의 참사였지만 끝까지 버텨낸 세 주인공은 모두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마지막으로 구조된 박승현 씨는 무려 17일 만에 생환했다.

지진이나 붕괴 사고로 매몰됐을 때 구조의 골든타임은 72시간이다. 하지만 이런 통념을 깬 사례도 많다. 최소한의 공간과 물 등 생존 필수 요건에 맞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마인드도 빼놓을 수 없다. 공포와 절망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마음가짐이 생존의 중요한 열쇠라는 사실을 삼풍사고 때 확인했다.

그러나 지금 청년 세대가 스스로를 비하하고 낙심하는 것은 이런 희망마저 보이지 않아서다. 정치 행태나 사회 구조에서 희망의 불씨조차 찾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정치 지도자들이 청년을 타박하고 민심을 매도하는 것은 그만큼 현실 감각이 없다는 소리다. 그들이 권력 의지나 속성에는 밝을지 모르나 왜 정치를 하는지, 바른 정치가 뭔지는 잘 모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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