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 가로쓰기'한글 전용…독자들 반향 엄청났죠
무언가 '특별한 것' '작품'을 만들어 보자는 분위기가 가득 차 있었다. 여러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창간에 임박해 대충 정리가 되었다.
"타블로이드 판형, 전면 가로쓰기, 한글 전용, 컬러 인쇄 도입이 가장 큰 변화의 줄기였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지지만 당시 대부분 신문들이 흑백이었고 모두 세로쓰기, 국한문 혼용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편집이었습니다. 한글 전용은 한겨레신문보다 5년이나 빨랐고, 가로쓰기는 조선일보가 1999년에나 도입했으니까요."
"전국 최초 주간지를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다는 것은 대단히 설레고 자부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낸 첫발자국이 후대의 기준이 되고 후발업체의 선례(先例)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죠. 선배들이 외국 연수 후 챙겨온 '타운 페이퍼'들을 보고 또 보며 편집 틀을 잡아가고 한 면 한 면에 담을 콘텐츠를 고민했습니다. 초창기 우리의 고민은 '생활정보'였습니다. 당시 절실한 시대적 요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상가에서 상인들이, 가정에서 주부들이 가장 필요한 정보를 담자는 원칙에 충실했습니다. 첫 작품이 나오던 날 전 부원이 함께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감동에 젖었던 것이 벌써 30년이 되었네요."
◆전면 가로쓰기'한글 전용 등 파격=무언가 '특별한 것' '작품'을 만들어 보자는 분위기가 가득 차 있었다. 여러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창간에 임박해 대충 정리가 되었다.
"타블로이드 판형, 전면 가로쓰기, 한글 전용, 컬러 인쇄 도입이 가장 큰 변화의 줄기였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지지만 당시 대부분 신문들이 흑백이었고 모두 세로쓰기, 국한문 혼용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편집이었습니다. 한글 전용은 한겨레신문보다 5년이나 빨랐고, 가로쓰기는 조선일보가 1999년에나 도입했으니까요."
신문 전지(全紙)에 익숙해 있던 독자들이 아이들 화첩 만한 신문을 넘기며 신기해하던 것도 새로운 풍속이었다.
◆창간호부터 시민들 엄청난 반응=첫 '생활정보'가 뿌려지고 나서 지역의 반응은 엄청났다. 시민들은 새 매체의 출현에 큰 성원을 보내왔다. 안방 살림부터 구석구석 생활정보까지 망라되면서 지역 생활, 경제의 축소판이라는 칭찬도 쏟아졌다.
"당시 '부동산 총정보'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여기서 제시된 가격이 대구 실거래가로 통용될 정도였습니다. 또 맛집에 한 번 소개되고 나면 손님들이 들어차 오전에 재료가 바닥나는 일도 허다했죠."
한 번은 도심 상가의 확성기 문제를 심층보도로 다뤘는데 다음 날 경찰들이 골목마다 순찰에 나서 고질 민원이 '원샷'에 처리된 일도 있다. 이렇게 초기 '생활정보'는 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아픈 곳을 어루만지며 차츰 시민들의 눈과 귀로 자리 잡았다.
◆초창기 대구시민 생활정보 산실='보고 듣고 말하고 싶은 정보를 모든 생활인에게'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시작한 '주간매일'은 초창기 대구 시민들의 가계, 살림, 생활정보의 산실이었다. 주간매일의 알찬 콘텐츠 못지않게 주목받는 분야가 있었는데 바로 편집이었다. 당시 1면의 사진, 편집은 장안에 화제가 될 정도로 신선하고 파격적이었다.
당시 편집, 제작을 맡았던 김정길 TBC 사장은 "1면에서 독자들의 주목을 끈 다음 그 감동으로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것이 1면 편집의 방향이었다"고 회상했다. 제목도 요즘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라 정보 위주, 정중한 제목으로 달아 독자들의 신뢰를 샀다. 이런 독자의 인기를 업고 주간매일은 1988년 3월 한국기자협회 기자상(신문편집)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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