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많이 거두면 민심에 '금' 간다…『세금전쟁』

입력 2016-08-06 05:20:04

세금전쟁/하노 벡'알로이스 프린츠 지음/이지윤 옮김/재승출판 펴냄

세금전쟁을 예고하는 선전포고가 최근 나왔다. 지난 2일 야당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이 대기업 및 연소득 5억원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은 높이고 중산층 및 서민의 세금 부담은 줄이는 세법개정안을 제시하며 '부자증세'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이에 대해 여당 새누리당(새누리)은 저성장과 저물가로 인한 경기 침체에 증세는 시기상조라며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9월 정기국회 심사 과정에서 여야 격돌이 불가피해 보이는 사안이다. '여소야대'가 된 마당에, 더구나 내년 대통령 선거를 1년 5개월 앞둔 시점이기에 더민주는 대선의 주요 어젠다가 될지도 모를 '경제민주화' 논의에 먼저 불을 지핀 것으로 풀이된다. 그만큼 새누리가 제시할 반대 논리의 수준 및 디테일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국민의당은 더민주가 제시하는 부자 증세의 기본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법인세 인상 등 몇몇 부분에서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현재 국회 제3당이기에 입법의 결정권(캐스팅보트)을 쥔 국민의당 도움 없이 더민주는 부자 증세를 밀어붙이기 힘들다. 두 야당이 조율해 다시 제시할 법안 내용에 벌써 촉각이 모이고 있다. 돌이킬 수 없다. 세금전쟁은 시작됐다.

이처럼 세금전쟁은 정부(여당 포함) 대 야당, 좀 더 명확히 표현하면 국가 대 국민의 구도로 벌어지고, 이는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국가는 세금이라는 수입을 얻기 위해 정치와 경제를 끊임없이 움직이며 명분 내지는 당위성을 구축하고 때로는 국민을 기만하고 폭력까지 행사해왔다.

과거에는 세금이 아닌 '공물'이라는 말이 쓰였다. 지금의 세금과 다른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세금은 내는 대신 국가의 보호와 복지 서비스 등 대가를 기대할 수 있지만, 공물은 그 대가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기꺼이 납세했다. 예컨대 공물에 종교 색을 잘만 입히면 사람들은 재물을 기쁜 마음으로 바쳤다. 그런 명목을 요즘 국가들도 붙인다. 유럽의 국가들이 조성하는 무슨 '긴급기금'이나 무슨 '연대기금' 같은 것은 시민성에 그럴듯하게 호소하며 시민들의 구미에 맞춘 세목들이다.

세금에 딱히 부여할만한 명분이 없을 경우 '인두세'의 원리가 적용됐다. 세금을 거두는 국가 입장에서는 편하다. 복잡할 것 없이 '1인당 무조건 얼마'라고 설명하면 되고 납부 여부를 확인하기도 쉽다. 요즘 TV 수신료가 그렇다. TV를 가진 사람이라면 1대(또는 1가구)당 무조건 얼마를 공영방송에 내야 한다. 여기에는 TV를 가진 사람이라면 방송을 내보내는 방송국에 재정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발상이 깔려 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또는 가구)이 TV 한 대쯤은 갖고 있기에 TV 수신료는 요금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인두세 격 TV 수신기 세금이 된다. 공영방송만 있던 시절에는 TV 수신료 납부가 합당한 의무였을 수 있지만, 수백 개의 TV 채널이 생겨난 지금은 의문스럽다.

말도 안 되는 세금은 과거에 더욱 많았다.

▷수염세=1699년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도입했다. 수염을 기르려면 세금을 내도록 했다. 당시 러시아인들은 면도를 인간에게 주어진 신의 형상을 우롱하는 것으로 여겨 꺼렸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은 이를 갈면서도 수염세 납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창문세=프랑스혁명 직후 프랑스 정부는 세금 정책에 어려움을 겪었다. 생활환경에 따라 세금을 매겨야 하는데, 시민들은 생활 모습을 감추려고 머리를 썼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정부는 겉으로 보이는 건축 양식, 바로 창문 개수를 과세 기준으로 삼았다. 예컨대 건물의 월세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창문 개수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명세=1993년까지 독일에 존재했던 세목이다. 말 그대로 설치된 조명에 세금을 매겼다. 같은 백열등이라도 디자인이 촛대인지, 물방울인지, 버섯인지 등에 따라 세율이 달랐다. 또 화물차 전조등부터 충전용 랜턴까지 과세에 참고해야 하는 분류가 워낙 다양해 세금을 거두는 사람과 내는 사람 모두 진땀 나게 만들었다.

과도한 세금은 이따금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역사를 바꿨다. 미국독립혁명의 시초가 된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은 영국의회가 차에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자 식민지 미국 사람들이 저항하며 촉발됐다. 이어 1789년 프랑스혁명도 세금에서 비롯됐다. 당시 프랑스 지배 계층이 누리던 과도한 세금 특권에 불만을 가진 시민들이 나선 것이었다.

이제 제대로 된 대가를 돌려주지 않으면 납세자들은 곧장 저항하는 시대가 됐다. 예를 들면 투표로 말이다. 얼토당토않은 명목의 세금은 금방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다. 증세와 감세도 이제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하고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당과 야당이 국민의 눈치를 보며 조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다만 국민들은 조세의 일관성과 투명성이 좀 더 향상되기를 원하고 있다. 두 저자 '하노 벡' 독일 포르츠하임대 경제학 교수와 '알로이스 프린츠' 독일 베스트팔렌빌헬름뮌스터대 재정학 교수는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해 현실과 동떨어진 감세 또는 증세 공약을 내거는 정치인들을 지적한다. 결국 세법 등 조세 제도는 일관성과 투명성이 떨어져 납세자들로부터 점점 신뢰를 잃게 된다. 시민들이 '공정'과 '형평' 같은 개념과 거리가 먼, 어떤 다른 기준에 따라 세금이 정해진다고 믿게 돼서다. 그러면 탈세가 유행하게 된다. 그 중 국가의 수탈에 대한 '정당방위' 개념의 탈세도 있을 수 있다. 물어보자. 이쯤 되면 과연 시민을 탓할 수 있을까?

400쪽, 1만8천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