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노년과 장년횡액

입력 2016-08-04 05:20:04

"내가 왜 구속?"

롯데장학재단 신영자(74) 이사장이 지난달 26일 구속기소되면서 내뱉은 말이다. 롯데면세점 입점과 관련해 화장품업체인 네이처리퍼블릭으로부터 20억원을 받은 혐의다. 롯데그룹 창업자 신격호(94) 총괄회장이 아버지다. 고희(古稀'70)를 넘어 감옥에서 썩을 것을 생각하니 그랬을 것이다. 설상가상 최근 서울중앙지검이 신 회장의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57) 씨와 그 자녀에 대한 재산 증여 과정에서 탈세 정황을 잡고 수사를 넓히고 있다. 신 씨 부녀가 때아닌 '노년횡액'(老年橫厄)을 만난 셈이다. '재앙은 홀로 오지 않는다'는 옛말처럼. 최근의 노년횡액으로는 이건희(74) 삼성전자 회장 성매매 의혹 동영상 스캔들도 있다.

그런데 요즘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 소식은 노년횡액만이 아니다. '장년횡액'(壯年橫厄)도 심심찮다. 바로 청와대 우병우(49) 민정수석과 진경준(49) 검사장,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의 손자 정일선(47) 현대BNG스틸 사장 이야기다. 우 수석은 처가집 재산 거래와 아들의 의경 근무 특혜 문제 등으로 집중적인 의혹을 받고 있고, 진 검사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정 사장은 3년 동안 운전기사 12명을 바꾸는 등 갑질 횡포로 집중포화다. 세인들은 인생의 황혼기에 만난 노년횡액과 달리 인생의 황금기에 자초한 장년횡액이 더욱 서글프다.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자 건강하지 못한 썩은 미래를 보는 듯해서다.

그러나 노년횡액이든 장년횡액이든 공통점은 있다. 이들 횡액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평생을 쓰고도 남을 만큼 풍족한 돈을 갖거나 물려받았다. 게다가 그런 돈이 물어다주는 세속적인 권력(힘)까지 갖고도 모자라 이를 함부로 휘두른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노년이든 장년이든 모두 넘치는 돈과 권력을 주체 못해 인생의 황혼기와 황금기에 재앙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꼴이다. 앞서 산 옛사람들이 뒷사람을 위해 남긴, 세상을 살며 경계해야 할 3가지 즉 '이른 출세(소년등과), 젊어서 아내 잃기(장년상처), 늙어 무일푼(노년빈전)'과 같은 말을 따르고자 한 많은 보통사람에게는 횡액의 주인공들이 사는 삶은 분명 딴 세상 이야기다.

한때 미국의 마이클 샌들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국내서 200만 부 넘게 팔렸다. 그만큼 모두 정의를 목마르게 기다린다는 말과 다름없다. 정의를 외치는 대한민국 검찰의 칼날이 무디겠지만 부정과 부패, 비리에 대해 국민을 위해 제대로 휘둘러주길 바란다면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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