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학생들은 오르고 싶다

입력 2016-08-04 05:20:04

지난달 중순 대학생 산악인들의 해외 원정을 취재하기 위해 중국 쓰촨(四川) 지역을 10여 일간 다녀왔다. 대구경북, 광주'전남, 부산 등 5개 시'도 학생산악연맹의 합동 원정대가 해발 6,204m의 거니에신산 등정에 나선 길이었다. 각 지역 연맹의 선배 OB 3명이 대장을 맡았지만, 대원들 12명은 재학생으로 구성되었다. 대구경북에서는 영남대, 계명대, 경일대에서 각 1명씩 참가했고, 광주'전남 학생이 5명, 부산이 4명이었다.

장비와 식료품 등 산더미처럼 많은 짐을 현지 포터들이 이고 지고, 또 나귀나 말의 등에 싣고 긴 행렬을 이루며 캠프까지 이동하는 것이 TV 등 매체를 통해 본 보통의 해외 산악 원정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들에게는 짐을 들어줄 포터도, 나귀도 없었다. 그 모든 것은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키만큼 높은 배낭에 짐을 가득 채워 해발 4,000m가 넘는 고산을 오르내렸다. 4,800m와 5,300m 높이에 설치해야 하는 캠프1과 캠프2까지도 직접 짐을 져 날라야 했다. 연부역강한 20대 청년들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맨몸으로도 숨을 헐떡여야 하는 고산지대를 짐을 지고 오르내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그럼에도 그들은 행복해했다. 자신들에게 해외 원정 기회를 준 선배들에게 감사했고, 재정적 지원을 해준 지자체에도 감사했다. 그들에게 그런 기회는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순수한 알피니즘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대견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힘든 조건이나마 그들에게 이런 고산 등반 기회가 더 많이 주어졌으면 좋을 텐데, 미래 우리 산악계의 주역이 될 이들이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26일간의 원정 일정을 무사히 끝낸 후 한 학생 대원을 따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산악부 활동에 어려움은 없는지, 외부의 지원은 어느 정도인지, 대학이나 고교 산악부의 현황은 어떤지 등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소속 연맹이나 학교 등에서 지원을 받는 산악부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어느 학교나 형편은 대동소이한데, 부원들의 회비 외 재정의 절반 정도를 졸업한 OB 선배들이 십시일반으로 걷어준 찬조금에 의존한다고 했다. 여름이나 겨울방학 동안 하계, 동계 훈련도 해야 하고 그래야 등반 기술도 제대로 익힐 수 있을 텐데 그런 살림살이로 과연 가능할지 궁금했다.

최근 들어서는 산악부에 입회하는 신입생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고 했다. 올해의 경우 신입 회원이 들어오긴 했으나 곧바로 탈퇴해버려 신입생 후배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이런 형편은 고등학교 산악부도 비슷한 듯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 정책과 청년 취업난 시대에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우리 산악계의 미래를 생각하면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원정에 동행했던 학생산악연맹의 임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요즘 학생 산악 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단체나 기업은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연맹을 운영하고 유지하는 데도 예산이 필요하지만 지자체나 상위 기관의 지원은 전혀 없는 게 현실이다. 요즘은 언론 매체들도 학생 산악 운동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아 더 기운이 빠진다고도 했다.

대구경북은 우리나라 산악 운동의 메카이다. 대구경북 출신으로 우리나라 산악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이들이 적지 않다. 그 대부분이 학생산악연맹 출신들이다. 지난 연말 개봉돼 화제를 불러 일으킨 영화 '히말라야'의 주인공들인 고 백준호, 고 박무택도 지역이 배출한 산악인들이었다. 걸출한 산악인들의 고향인 대구경북에서 학생 산악 운동이 힘을 잃을까 걱정스럽다. 우리나라 산악 운동이 상업 등반에 치우쳐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가운데, 알피니즘의 순수성을 공부해야 할 학생들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드는 현실. 오늘날 대한민국 산악 운동의 현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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