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참여마당] 수필: 쿨하게 떠나 핫하게 즐긴 뉴욕 맨해튼 문화 바캉스

입력 2016-08-04 05:20:04

작년 여름, 딸아이와 함께 떠났던 이탈리아 여행에 이어 올여름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딸과 그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아내를 만나기 위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문화계 지인과 함께한 점심 식사 자리에서 농담 삼아 나온 미국으로의 휴가는 마침 여건이 맞아 비자부터 항공권 예약까지 단 하루 만에 현실이 되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꼼꼼하게 계획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렇게 느닷없이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흥분과 설렘은 배가 되는 느낌이랄까. 나를 보고 깜짝 놀랄 가족들을 생각하니 길고 긴 비행도 힘들지 않았다.

뉴욕은 내 인생에 있어 특별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24년 전, 한국에서 음대를 졸업하고 창원시향 단원 생활을 하던 중 유학을 결심하고 이곳으로 왔었다. 꽤 늦은 나이에 시작된 유학 생활이라 공부를 마칠 때까지 몇 년간 뉴욕에 살았지만 유학생에게 관광은 사치였다. 늘 같은 장소만 오갔고, 같은 음식들만 먹어서 내게 뉴욕은 단편적인 기억뿐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한편, 새로운 뉴욕을 가능한 한 많이 만나보고 싶었다.

밤늦게 맨해튼에 도착한 뒤 그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시티 투어가 시작됐다. 처음으로 내가 찾은 곳은 뉴욕 웨스트 65번가 140번지에 위치한 세계적 명성의 공연예술 종합 센터인 링컨센터였다. 1962년 건립된 이곳에는 공연예술도서관, 줄리아드 음악학교 등이 있고, 뉴욕시립발레단,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 등 11개 예술단체가 상주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단연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전용 홀이자 음악가들에게는 선망의 무대인 '애버리 피셔 홀'(Avery Fisher Hall)이었다. 그런데 작년 가을부터 이 공연장의 이름이 '데이비드 게펜 홀'(David Geffen Hall)로 바뀌었다고 한다. 공연장 개보수 비용으로 1억달러(약 1천100억8천만원)를 기부한 할리우드 제작자 게펜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데 오랜 세월 애버리 피셔 홀로 불린 세계적인 공연장이 거액의 기부금으로 하루아침에 간판이 바뀌기도 하는 곳이 바로 뉴욕인 것 같다.

발걸음을 돌려 재능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젊은 예술가들의 꿈이 자라는 줄리아드 음악학교를 들렀다. 서로의 악기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앙상블을 이루는 학생들을 보니 뉴욕에서의 유학 시절도 다시금 생각나고, 음악인으로 한창 꿈에 부풀었던 청춘이 그립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음악인들의 꿈의 무대 카네기 홀과 뉴욕의 초록 심장 센트럴파크, 쇼핑의 거리 뉴욕 5번가, 세계의 지식 창고 뉴욕공공도서관, 뮤지엄 마일을 지나면서 들른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노이에 갤러리, 구겐하임 미술관, 뉴욕 현대 미술관 등 발길이 닿는 대로 뉴욕의 거리를 누비며 이 도시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렇게 뉴욕에 8일을 머물렀다. 하지만 뉴욕 '맨해튼'이란 커다란 숲을 전체적으로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장거리 이동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관광지를 걸어서 이동했었다. 그러다 지친 어느 하루는 잠시 길에서 휴식을 취하며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한 적이 있다. 맨해튼 거리를 느린 걸음으로 걷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쫓기듯 걸음을 옮기는 뉴요커들을 보며 늘 일상에서 종종걸음을 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조금만 천천히 걸어도 그동안 보지 못한 수많은 풍경과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지금껏 그렇게 살지 못한 것만 같아 다시 한 번 느림의 미학을 가슴에 새겼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만 하더라도 뉴욕에 다시 오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미처 몰랐다. 유독 짧게만 느껴졌던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 속에 사랑하는 뉴욕의 가족들을 뒤로한 채 대구로 발걸음을 옮긴다.

Good Bye!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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