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포구의 새벽

입력 2016-08-04 05:20:04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통통거리는 발동기 소리가 작은 어촌마을을 흔들었다. 창문을 살짝 열어젖히고 고개를 내밀었다.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미풍이 얼굴을 감쌌다. 하늘에는 낮게 뜬 초승달이 심술궂게 바다 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열이 쏟아지던 대낮의 고요와 평온, 잔잔한 파도는 없었다. 작은 고깃배 한 척이 축구장만 한 포구에 조심스레 접근 중이었다.

몇몇 아낙들이 쪼그리고 앉아 뱃머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수십 년간 육지에서 살아온 필자에겐 낯설고 서정적인 풍경이다. 발걸음을 재촉해 포구로 갔다. 배 옆구리가 콘크리트벽에 비스듬히 부딪치자 늙은 어부가 네모난 플라스틱 상자 세 개를 아낙들에게 건넸다. 두 곳에는 숨을 거둔 청어들이 있었고, 한 곳에서는 새끼 문어 한 마리가 꾸물거리고 있었다.

비릿한 생선냄새가 콧구멍을 지나 텅 빈 위장 속까지 스며들었다. 메스꺼웠다. 거칠고 정직한 삶의 현장에 내 육체가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부끄러웠다. 잠깐 고개를 먼바다 쪽으로 돌렸다. 등대는 없었다. 짙은 어둠을 헤치고 작은 고깃배 한 척이 또 미끄러져 들어왔다. 늙은 어부와 아낙들의 움직임, 어획량은 비슷했다. 문어 대신 소라와 물가자미가 담긴 상자만 달랐다.

이 작은 포구엔 TV 화면에 가끔 등장하는 만선의 기쁨이나 소란은 없었다. 힘든 노동 뒤의 허무한 귀가를 보는 듯했다. 방금 배에서 내린 그물 손질에 여념 없는 한 아낙 곁으로 걸어갔다. 낯선 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엔 검은 주름들이 깊게 패어 있었다. 칠순을 훌쩍 넘긴 할머니 같았다. 꾹 다문 입술엔 노년의 체념과 여유가 묻어났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다시 바다로 나가는 고깃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비좁은 선상에는 손질한 통발이 수북했다. 수평선 위로 붉은빛이 넓게 피어올랐다. 일출 직전이었다. 1시간쯤 물거품을 뿜어내던 발동기소리가 잦아들었다. 늙은 어부는 허연 부표를 갈고리로 낚아챈 뒤 수면 위로 떠오르는 통발을 하나씩 건져 올렸다. 대부분 텅 비어 있었다.

"요즘은 바다 밑도 황무지나 마찬가질세…. 이젠 배질(조업)도 못해 먹게 됐어!"

몇몇 통발 속에 갇힌 시커먼 성게와 회색빛 소라를 쳐다보는 필자에겐 절망의 아우성으로 들렸다. 하지만 도시인의 권태롭고 상냥한 목소리와는 달리 진솔하고 묵직했다. 2시간여 바다 노동을 끝낸 배가 천천히 포구로 향했다. 휘청거리며 육지에 발을 디딘 필자에게 방금 건져 올린 큼직한 소라들을 골라 비닐봉지에 담아 주었다. 극구 사양했지만 안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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