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여름캠프에서 만난 제프

입력 2016-07-30 05:00:01

경북대(국문과) 졸업. 창조문예 시 부문 등단
경북대(국문과) 졸업. 창조문예 시 부문 등단

귀엽게 생긴 고교생 제프(Jeff'가명)를 만난 것은 필자가 여름캠프를 운영할 때였다. 제프는 그의 엄마와 함께 점심시간이 되면 캠프를 찾아왔다. 남루한 모습이 안쓰러워 말없이 점심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부모들로부터 제프 엄마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고 제프는 슈퍼에서 물건을 훔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학부형들은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제프 모자를 캠프에 얼씬도 못 하게 하자고 건의했다.

불안한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공교롭게도 도둑이 내 지갑을 훔쳐서 화장실에 버리고 가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삽시간에 캠프 내에서 핫이슈가 되었고 엄한 규율 교사가 며칠에 걸쳐 도둑 색출 작업에 돌입했지만, 범인은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수사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프가 조용히 찾아와서 내 지갑을 훔친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며, 내가 지갑 주인인 줄은 정말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울먹거렸다. 배가 고파서 훔친 돈으로 밥을 사먹었다고 했다. 엄마 따라 여러 보호센터를 돌아다니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고, 여름이라 잠은 공공건물에서 자고, 화장실에서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한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제프 모자가 잠은 어디서 자는지, 저녁은 먹었는지 걱정이 되었다. 남편에게 그들이 다시 힘을 얻어 떠날 준비가 될 때까지 우리 집에서 지내게 하면 어떨지 물어보았고, 남편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런데 막상 동거할 생각을 하니, 제프가 집 물건에 손을 댈까 봐 염려스러웠다. 남편은 다행히 우리가 부자가 아니라서 비싼 물건이 없으니 잃어버려도 괜찮다고 했다. 또 제프가 우리 아들과 방을 같이 사용하면서, 욕설이나 마약 같은 나쁜 것을 은밀하게 전수할까 봐 마음이 졸아들기도 했다. 그러나 희생 없이 어떻게 그들을 맞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결심한 김에 그들을 데리고 왔다.

우리는 아침에 함께 출근하고, 제프 엄마는 캠프 점심 준비를 돕고, 제프는 인근 신발 가게 점원으로 용돈을 벌었다. 퇴근도 함께 하고 저녁식사를 마치면, 제프와 우리 아들은 여느 평범한 청소년처럼 즐겁게 농구를 했고, 제프 엄마랑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중학교 때 이민을 왔는데 미국 생활에 적응 못 하는 외톨이였고, 자신의 성격 때문인지 남편도 떠나 버렸고, 딸도 가출해 버렸다고 했다. 이제 자신에게 하나 남은 아들 제프를 잘 키우고 싶은데 그럴 자신이 없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캠프가 끝나갈 무렵, 한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제프 모자에 대한 소식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며, 자기 집에 빈방도 있고, 자기 공장에 취직도 시킬 수 있다며 모자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취직된 듯 기뻐하며, 모자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몇 달 후, 제프 엄마로부터 마음 편히 쉬게 해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요즘 한국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영구임대 아파트에 사는 거지라는 뜻의 '휴거'라는 가슴 아픈 단어가 유행한다. 거기다가 임대 아파트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이런 아이들과 어울릴까 봐 이사를 가거나 위장 전입을 한다. 사람보다 돈을 더 중시하는 물질 만능주의가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뼈아픈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부자가 삼 대를 못 가고 빈자가 삼 대를 안 간다'는 말처럼, 돌고 도는 재물이나 명예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자녀들을 불편하고 수고스럽고 희생을 필요로 하는 곳을 피하는 나약한 존재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곳에서 소망과 긍정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으로 키울 수 있는 통 큰 어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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