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진철 회장 가장 기억에 남는 산
30여 회에 가까운 원정 산행에서 숱한 좌절도 겪었고 극한의 상황에서 죽음과도 맞섰던 차진철 회장. 수많은 산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코스를 든다면 1994년 초오유 등반을 친다.
산악계에서 전설이 되어 있는 엄홍길, 고 박영석 선배와 동기 한왕용과 함께한 등반이었다. 당시 차 회장은 원정대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날 뜻밖의 재앙은 차 회장의 산악일지에 큰 철학을 남겼다.
"메뉴까지 기억에 남아요. 소양곱창 찌개를 끓여서 입에 막 떠넣는 순간 눈사태가 일어났어요. 누군가 '튀어' 하는 고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텐트 속에서 제가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텐트 속에서 요리를 하느라 양말도 벗고 내의 차림으로 있었기 때문에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눈에 쓸려가는 와중에도 양말, 장갑, 이중화(겨울 산이나 고소등산의 가혹한 기상조건에서 주로 쓰이는 등산화)를 챙겼다. 설산에서 신체 노출은 치명적인 동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텐트와 같이 휩쓸렸기 때문에 의류와 장비는 그대로 건질 수 있었다.
"급한 대로 장갑을 발에 신고 양말을 손에 낀 채로 체온을 유지했어요. 상황이 진정되자 장비를 챙기고 겨우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장비를 분실한 대원들이 내피에 슈퍼게이트를 신고 이중화를 발에 친친 감은 채 베이스캠프로 내려오던 풍경은 웃어넘기기에 너무 소중한 교훈으로 남아 있다. 이후 차 회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양말을 벗지 않는다.
"만약에 맨발, 내의 차림에 눈사태가 난 설산에 내동댕이쳐졌다면 아마 전 이 세상에 없었겠죠. 살아 남았어도 이미 심각한 장애가 와서 더 이상 산과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을 겁니다. 자연 앞에서 몸을 낮추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 초오유 텐트 속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이다.
▶차진철 회장 걸어온 길
1968년 포항 출생, 대동고를 졸업했다. 1985년 영남이공대에 입학해 산과 첫 인연을 맺고 전문산악인의 길을 걷기 위해 1990년 경일대에 편입했다. 1991년 북미 매킨리봉(6,194m) 원정에 나선 후 지금까지 히말라야 7좌, 세븐 서미트 중 6곳을 완등했다.
대구시산악연맹 등반기술이사, 전무이사를 거쳐 최근 대구시산악협회장으로 선출됐다. 체육훈장 기린장(1997년)과 거상장(2013년)을 수훈했으며 2014년 지역 산악인의 최고 영예인 한솔산악상 '산악기술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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