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국민이 없다면 국가도 없다

입력 2016-07-29 05:00:00

가마솥처럼 푹푹 찌는 무더위에다, 머리와 가슴마저 푹푹 찐다. '대프리카'라 불리는 폭염의 도시 대구 한복판에서 신문사 '온라인뉴스팀'에서 하루 종일 쏟아져나오는 각종 뉴스들을 체크하고 있다 보니 더욱 더운 여름이 되고 있다.

뉴스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오나니 한숨뿐이다. '대체 이 나라에서 국민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된다. 최근 가장 핫한 이슈인 사드 사태만 봐도 그렇다.

분명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지방자치를 하고 있는 나라다. 하지만 사드 사태와 관련해서는 어디서도 민주주의적이거나 지방자치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다. 그냥 "까라면 까라"는 윽박에다, 성주 군민들을 '불순분자'로 몰아가려는 여론몰이가 우려스러울 정도다. 문제가 됐던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처럼 정부 역시 이런 시선으로 국민을 바라보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보안 때문에 모든 과정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정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지난 13일 사드 성주 배치 발표 이후 2주 동안 우리 정부가 행한 행동들은 '오만'과 '불통'이라는 코드만을 보여줬다. 국민은 알 필요도 없고, 정부의 결정에 대해 따져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게다가 수도권 언론을 동원해 국익을 위해서는 어떤 불이익도 감내하고 불필요한 논쟁을 하지 말라는 여론까지 형성해 가고 있다.

아직까지도 왜 성주 성산포대가 사드 배치 적합지로 평가됐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대다수의 성주 군민들이 사는 성주읍과 고작 1.5㎞ 떨어진 곳에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이 왜 나오게 됐는지 해명하고 설득할 의사도 없어 보인다.

황인무 국방부 차관은 지난 22일 성주에 내려와 성주 사드배치철회투쟁위원회와 지역 보훈단체들을 만나기로 했지만, 전화통보만 하고 다음 날 떠나버렸다고 한다. 결국 황 차관은 성주에 왔다는 생색만 낸 채 서울로 가버렸다. 그리고 정부는 대통령을 '나라님'이라며 일말의 애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호소하는 성주 유림들의 목소리도, 평화 시위라는 기치를 내걸고 한여름 뙤약볕에 길거리로 나앉은 농민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막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각종 의혹에도 눈 막고 귀 막고 버티고만 있는 청와대다. 우 수석은 처가와 넥슨과의 1천300억원대 땅 거래 개입 의혹, 진경준 검사장에 대한 부실 검증, 의경 아들의 꽃보직 전출, 아들의 친박계 의원실 인턴 특혜 채용, 우 수석 부인의 농지법 위반 등에 대한 의혹까지 불거진 상태다. 그런데 청와대는 언론이, 정치권이, 국민이 아무리 아니라고 외쳐도 그저 외면만 할 뿐이다.

의문이 제기된 지 5년 만에 겨우 진상조사와 처벌이 진행 중인 옥시 사태도, 한국인 소비자들을 봉으로만 알고 제품만 팔아먹으면 그만이라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폭스바겐이나 이케아의 행태도 '국가가 나서서 자국민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정책이 있었다면 이렇지 않았을 텐데…'라는 답답함이 앞선다. 오죽하면 '호구 코리아 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까.

정부도, 공무원도 너무 쉽게 망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이 문장은 청와대도 정부도 명심 또 명심해야 하는데 이미 사문화됐다며 땅바닥에 내팽개쳐 버린 건 아닌지 걱정이다.

국민이 없다면 국가도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국민 중 어느 누구도 존중받지 못하고 함부로 대접받아야 할 사람도 없다. 국민에게는 국가를 위해 행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국가로부터 당연히 받고 누려야 할 권리도 있는 법이다. 오늘 대한민국은 이런 국민의 권리를 얼마나 지켜주고 있는가. 제발 국민을 존중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최우선 가치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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