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울림] 사드가 남의 일인가

입력 2016-07-29 05:00:00

고려대(신문방송학 박사) 졸업. 전 중앙일보 기자.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고려대(신문방송학 박사) 졸업. 전 중앙일보 기자.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보수 언론 '성주 사드 반대' 님비로 몰아

국가적인 문제임에도 시민들 반응 싸늘

정부의 위험비용 지역에 전가 되풀이

지방분권 이룰 개헌 논의 불씨 살려야

요즘 대구경북지역 민심이 사납다. "신공항은 날아가고 사드가 날아왔다"는 말에 속내가 다 담겨 있다. 신공항이 날아갈 땐 섭섭함이 더 컸는데, 사드가 날아오니 분노가 폭발한다. 사드 배치 장소 결정 과정에 당사자인 성주지역민이 배제된 점이 화를 부채질했다. 무시당한 느낌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성주지역민들은 연일 격렬한 항의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수도권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반응은 차갑다. 대전에서 소규모 사드 배치 반대집회가 열리는 등 산발적인 집회가 이어졌지만 전반적인 시민의 호응은 낮다. 야당도 눈치만 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양새는 아니다. 이제 사드 배치 반대는 오롯이 성주지역민들의 몫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는 데는 언론, 특히 지상파와 보수적인 중앙 일간지들의 영향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이 매체들의 사드 보도는 두 가지 전제를 깔고 있다.

첫째는 '사드 배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이라는 것. 둘째는 '해법은 내부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정당화하는 논거는 안보 우선주의이다. 이런 보도 프레임 속에서 성주지역민들의 항의 시위는 안보라는 국익보다 지역 사정을 내세우는 지역이기주의로 비치기 쉽다. 사드 배치가 성주지역민과 정부의 문제로 축소되고 국민은 국외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드가 전 국민에 초래하는 영향, 예컨대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인한 피해, 한반도 냉전 구도로 인한 장기적인 안보 불안 등과 같은 문제는 논의의 장 밖으로 밀려난다. 경찰이 성주지역민의 시위에 '외부 세력' 엄단 방침을 발표한 것도 당사자와 외부 세력을 구별 지음으로써 사태를 지역민의 문제로 축소하려는 선제적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드 배치가 주둔 장소 선정 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오천만 국민 전체의 문제임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사드를 자기 문제로 공감하고 있을까? 행여 보수적 언론의 프레임에 동조해서 안보와 국익이라는 구호 뒤에서 성주지역민의 곤경을 남의 일로 치부하는 지역민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사드 배치로 성주지역민이 겪는 고통은 익히 반복되어 온 일이다. 이 사태의 본질은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위험비용은 언제나 가장 약한 장소에 전가된다는 것이다. 이 사태를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면 오늘 성주의 일은 내일 당신 지역의 일이 될 수도 있다."

권력이 중앙정부에 집중돼 있고, 인구와 경제력 등 국력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위험비용이 지역민에게 흘러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구도이다. 이 구도에서 지역이 취할 수 있는 손쉬운 생존 전략은 중앙정부에 잘 보여 다른 지역보다 더 나은 떡고물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갑'에게 충성 경쟁하는 '을'들만큼 다스리기 쉬운 대상은 없다. 그런 '을'들의 손에는 결코 떡이 쥐어지지 않는다. 우리 지역만 일단 살고 보겠다는 지역이기주의는 장기적으로 중앙집권적 권력구조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그동안 대구경북은 '을 중의 갑'으로, 수혜받는 지역으로 스스로를 상상해왔다. 여당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그런 환상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신공항의 매연과 사드의 굉음이 단꿈을 깨 놓았다. 사드는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여당의 텃밭으로 중앙정부의 시혜를 꿈꾸며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독립의 고단함을 무릅쓰고 스스로 결정의 주체가 될 것인가. 지역이 스스로 결정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지방분권이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분권을 이루어 중앙정부와 교섭력을 높이지 않으면 제2, 제3의 사드 사태는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성주지역민의 사드 배치 반대운동이 지방분권을 명문화하는 개헌 논의의 불씨가 될 수 있도록 전 지역민이 참여의 힘을 발휘해야 할 때다. 영남과 호남 사이에 그어진 지역주의의 전선이 지자체와 중앙정부 사이로 옮겨 가는 새로운 상상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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