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사드 타산지석 될 국책사업] 주민 투표·특별법·다자 협의체로 갈등 풀었다

입력 2016-07-20 20:02:09

지난 13일 성주군 성주읍 성밖숲에서 열린 사드 배치 반대 범군민 궐기대회에 참가한 군민 5천여 명이 결사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지난 13일 성주군 성주읍 성밖숲에서 열린 사드 배치 반대 범군민 궐기대회에 참가한 군민 5천여 명이 결사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성주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철회' 투쟁이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끓어오르고 있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일방통행이다. 성주 군민들은 주민 동의조차 거치지 않은 정부의 일방적 결정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분노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 정부는 군사기지 건설이나 미군기지 이전 등에서 일방통행식 사업 추진을 거듭해 주민 갈등을 스스로 자초했다. 또 걷잡을 수 없이 갈등이 커진 뒤에야 특별법 제정 등 보상 차원의 해법을 제시했다.

정부는 이번 성주 사태에서도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사드 배치가 단순한 주민 갈등을 넘어 자칫 국론 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고 있지만 사후 대책 마련에 두 손을 놓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과거 유사한 국책사업 갈등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주민 갈등 해결을 위한 협의체 구성과 특별법 제정 등 다양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갈등 해소 추진단 발족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대한민국의 대표 갈등 사례로 꼽힌다.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갈등의 고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7년 당시 정부는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 계획을 확정했다. 당시에도 마을 주민들은 정부의 일방적 결정이라며 거세게 저항했다. 외부 단체까지 반대 시위에 합세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 바람에 해군기지 건설 공사는 4년 넘게 표류했다. 주민들은 계속되는 시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마을 주민 간 반목과 갈등도 적지 않았다. 정부와 주민 모두가 큰 상처만 입었다.

이에 정부는 2008년 9월 제주 해군기지를 크루즈 선박이 기항할 수 있는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으로 개발하는 해법을 내놨다. 정부와 제주도가 공동으로 15만t 크루즈선 2척의 안전한 입항을 시뮬레이션하고 제주특별자치법 개정으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또 2010년 8월에는 제주 해군기지 갈등 해소 추진단을 발족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해군기지 건설공사 문제로 인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자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신설을 제안해 정부가 추진단 구성'운영에 합의했다. 이듬해 8월 우 제주도지사와 문대림 제주도의회 의장, 민주당 소속 강창일'김우남'김재윤 국회의원, 한나라당 김동완 제주도당위원장 등이 만나 ▷평화적 해결 ▷상호존중 ▷조속한 해결 ▷당사자 해결의 원칙 등 '해군기지 해결 4원칙'을 제시했다.

제주 해군기지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지만 이 같은 해결 노력에 힘입어 해결의 실마리는 찾았다. 정부는 2013년 5월 착공에 이어 올해 2월 제주 민군복합항을 준공했고, 주민들은 복합항을 통한 지역 개발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평택 미군기지-특별법 제정

2004년 한'미 정부는 주한미군 용산기지를 평택 팽성읍 대추리로 완전히 이전하는데 합의하고, 그해 12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는 비준 동의안을 가결했다. 평택은 1990년대부터 미군기지 이전에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 발표 이후에는 그 정도가 극심했다. 평택기지 확장에 반대해 고향을 지키려던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2004년 9월부터 2007년 3월까지 935일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대추분교 등에서 촛불시위를 했다.

이 와중에 국방부와 경찰은 2006년 5월 4일 오전 대추분교 강제퇴거(행정대집행)에 돌입했다. 시위 중인 주민과 충돌해 유혈 사태로 번졌다. 이날 주민 등 524명이 연행됐고 210명이 다쳤다. 경찰 120여 명도 부상을 입었다.

같은 달 12일 한명숙 국무총리가 대추리 사태를 평화로운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겠다는 요지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보다 앞선 2004년 5월 정부는 한덕수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주한미군대책 실무위원회'를 열고 용산기지 이전 예정지인 평택을 집중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을 만들기로 했다. 2005년 평택지원특별법은 제정됐고, 2014년 12월 법 개정으로 한 차례 연장됐다. 이 법은 주한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이전 사업의 효율적 추진과 미군기지 이전 지역 주민의 이주 대책, 주변 지역 발전 지원과 이전 지역 주민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규정을 명문화했다.

◆신한울원전-5자 상설 협의체(갈등 해결 기구)

2014년 11월 정부와 울진군 간 신한울원전 건설 협상이 15년 만에 타결됐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물리적 충돌이나 법'제도 개정 없이 대화로 끌어낸 결과였다.

울진 신화1리 주민들은 방사선'전자파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했다. 게다가 농지 편입 결정으로 경제적 위기에 내몰려 집단이주 등을 요구했다. 당시 신화1리 주변 1㎞ 인근에는 원전 6기가 운영 중이었고, 4기는 추가 건설 중 또는 건설 예정이었다.

정부는 이 같은 주민 갈등 해결을 목표로 한전'한수원'산업부'울진군'주민 간 5자 협의체를 구성했다. 또 5자 간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국민대통합위원회에 갈등 조정을 요청했다. 대통합위는 '공공기관 갈등관리 지원사업' 프로그램에 따라 민간 갈등조정전문가 3인을 추천하고 총 12차례의 갈등조정회의를 열었다. 민간 갈등조정인들이 이해당사자 간 소통을 유도하면서 주민은 인내심을 갖고 대화에 임했다. 참여자들은 주민 고통을 공감하면서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현행제도상 집단이주가 불가하다는 점을 주민들이 수용했고, 한전'한수원'산업부 측은 전자파 역학조사, 소음측정, 건강검진 보장 등 주민 불안감을 해소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지원책 마련 등에 최종 합의했다.

◆사전에 갈등 조정해야

이처럼 국책 사업마다 정부의 일방통행과 주민 갈등이 되풀이되면서 보다 근본적인 사태 해결을 위해 사전 갈등 조정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서울 은평갑)은 지난 18일 의원회관에서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 및 해결에 관한 법률'의 입법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이 법의 골자는 국가를 포함한 공공기관이 어떠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지역 주민들을 포함한 갈등 조정 협의회를 구성하고, 향후 우려되는 갈등 영향 등을 분석하는 방안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는 사드 배치 예정지로 확정된 성주 군민들과 제주 강정마을, 송전탑 문제로 오랜 시간 한전과 갈등 관계에 놓인 경남 밀양 주민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박주민 의원은 "국책 사업에 따른 주민 갈등을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면 공공정책의 효율성을 저해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켜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며 "국책사업 시행에 반드시 주민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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