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비파열성 대뇌동맥류 이병로 씨

입력 2016-07-19 22:30:02

"독거노인의 독은 사람 죽이는 毒이야"

십수 년째 가족 없이 홀로 대장암, 중풍, 심근경색 등 병마와 싸우다 최근 긴급수술이 필요한 뇌혈관 질환까지 얻게 된 이병로 씨.
십수 년째 가족 없이 홀로 대장암, 중풍, 심근경색 등 병마와 싸우다 최근 긴급수술이 필요한 뇌혈관 질환까지 얻게 된 이병로 씨.

"독거노인의 독은 독(獨)이 아니라 독(毒)이여. 차츰차츰 사람 죽이는 독."

수술 후 중환자실에 누워 더듬더듬 말을 잇는 이병로(가명'66) 씨는 나이보다 연로해 보였고 혼자였다. 어렵사리 입을 떼는 내내 입이 말랐지만 간호사에게 물 한 컵 부탁하기가 미안해 괜찮다 했다. 이 씨에게는 간호해 줄 가족도 보러 오는 친구도 없다. 혼자 지낸 지 십수 년이 넘었지만 이 씨는 아직도 혼자가 익숙하지 않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아파야 하는 삶이라면 그냥 삶을 등지고도 싶었다. 지난 6월 급히 수술을 받지 않으면 죽을지 모르는 '비파열성 대뇌동맥류' 진단을 받고서는 수술비 마련이 어려워 수술을 포기하려 했다. 사회복지사의 설득 끝에 최근 수술을 받았지만 이 씨는 잦은 병환으로 노쇠한 몸이 또 고장 날까 벌써 걱정이다. "이래 살아 뭐 하나 싶어. 내가 아파서 애먼 사람들 고생만 시켜." 이 씨는 유일한 병문객인 사회복지사의 손을 꼭 잡았다.

◆독(毒)거노인

이 씨는 혼자 밥 먹을 때가 제일 외롭다. 내 한 몸 끼니를 챙기려고 냉장고를 열려다 서러워져 굶기도 여러 번, 이 씨는 하루 한 끼를 겨우 챙겨 먹는다. 이 씨도 처음부터 혼자는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는 여느 가장들처럼 화물차를 운전해 네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한 가정의 대들보였다. 아내의 외도가 불행의 서막이었다. 아내는 어린 자녀를 두고 집을 떠났고 직업 특성상 지방으로 떠돌아다녀야 해 자녀를 노모에게 맡겼는데 노모가 돌아가시면서 자녀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첫째인 딸은 고등학교 때, 둘째인 아들은 초등학교 때 집을 나가 지금까지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최근 수술을 앞두고 보호자가 필요해 사회복지사가 어렵사리 딸을 찾아 연락했지만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딸은 아버지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그런걸. 미안할 뿐이지."

10년 가까이 영구임대아파트에서 기초수급자로 홀로 지내는 이 씨의 곁에 있어주는 것은 신뿐이다. 이 씨는 성당을 다니며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신께 '나쁜 맘을 먹는 나를 꾸짖어달라'고 속으로 빌었다.

◆자꾸만 고장 나는 몸

이 씨는 몇 달 전부터 자꾸 머리가 아팠다. 십 년 넘게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고 예전에도 병이 많았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두통은 끊일 줄 몰랐고 지난 6월 찾은 병원에서 '비파열성 대뇌동맥류' 진단을 받았다. 뇌혈관이 부풀어오르는 병으로 뇌혈관이 터지게 되면 3분의 1은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는 병이었다. 수술이 급했지만 이 씨는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천만원이 넘는 수술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고 고쳐놔도 결국 또 아프게 될 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몸이 자꾸 고장이 나. 고쳐도 끝이 없어."

16년 전부터 수가지 병이 차례로 이 씨를 찾아왔다. 대장암 수술을 시작으로, 결핵 때문에 폐가 고장 나 농흉과 늑막염을 앓았고 이때쯤 심근경색도 발병했다. 2008년 중풍으로 쓰러진 후에는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젊은 나이에 중풍이 온다는 게 내 얘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마비가 오지 않아 그나마 거동이라도 할 수 있는 게 다행이지."

지난해에는 심근경색을 오래 앓은 탓에 혈관이 막혀 스텐트 삽입술을 받았고, 성치 않은 몸에 뇌혈관까지 문제가 생기자 이 씨의 머릿속엔 그만 포기하자는 생각만 짙어졌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그냥 편하게 가고 싶다'고 말하는 이 씨를 사회복지사가 겨우 설득해 수술을 받았지만 의사는 심장이 좋지 않고 당뇨 고혈압 등 지병이 많은 이 씨에게 언제 어느 병이라도 찾아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 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손바닥 위에 올려진 한 움큼의 약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사는 게 참 우습지. 포기하고 싶다가도 결국은 살아야겠다고 약을 먹는 게 말이야."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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