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사드의 활용 가치

입력 2016-07-14 20:44:00

유대교 최대 명절인 '욤키푸르'(속죄의 날) 기간에 터졌다고 해서 '욤키푸르 전쟁'으로 불리는 1973년 제4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시리아군의 완벽한 기습을 당했다. 미국의 지원으로 이스라엘이 전세를 돌리긴 했지만, 전쟁 초반의 패배는 '이스라엘군 불패' 신화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은 3차례의 '중동전쟁'에서 모두 신속하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1973년 1월부터 10월 사이 이집트군은 19번이나 전시체제에 들어가는 등 전쟁의 징후는 널려 있었으나 골다 메이어 총리 등 정책 결정자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집트가 군사력이 자기보다 월등히 우세한 이스라엘을 상대로 또다시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는 당시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전쟁 계획을 완벽히 오판한 것이었다.

사다트는 이집트의 전력이 이스라엘보다 열세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벌인 전임자 나세르와는 다른 방식의 전쟁을 구상했다. 즉 치고 빠지는 식의 '제한전'이었다. 그 목적은 수에즈 운하 동쪽 제방에 대한 군사적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군 수뇌부는 이를 전혀 몰랐다. 이집트가 공격한다면 그 시점은 총력전 준비를 마친 다음이 될 것이라고 가정했던 것이다.

그 결과 전쟁 발발 전날인 10월 5일 이집트군과 시리아군이 전투준비를 완료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도 메이어 내각은 총동원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런 결정을 내린 배경 중의 하나는 이집트와 시리아가 공격해도 예비군이 동원되기 전까지 정규군이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었다. 물론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는 승리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큰 타격을 받았다. 사다트의 국제적 위신은 하늘을 찌르게 된 반면 이스라엘은 아랍에 동조하는 국가들의 단교(斷交)로 외교적 고립을 피할 수 없었다.

우리도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국방 예산이나 무기의 질에서 열세인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일 능력이 없어 전쟁은 없을 것이란 생각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북한이 이를 역이용해 정치적 목적을 노린 제한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없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이는 너무나 안이한 생각이다. 북한은 그런 목적을 위해 1천 기의 보유 미사일을 이용할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사드의 국내 배치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런 유혹을 포기하게 하는 방벽으로도 활용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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