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호 씨 "토종 배추·무, 고려 왕실서 약용 재배"

입력 2016-07-12 22:30:02

어머니에게서 재배법 배워 토종 배추·무 맥 이어

"지금 우리가 담가 먹는 배추, 무 김치는 거의 모두 개량종입니다. 1950년대 우장춘 박사에 의해 들여온 것이 현재에 이른 거죠. 그래서 우리 땅의 사람들이 정작 우리 배추, 무의 참맛을 모르고 사는 겁니다. 개량종을 조상 대대로 이 땅에서 전래한 것인 줄 알고 먹고 있습니다."

조상 대대로 토종 배추, 무를 지켜 오며 배추, 무 종자의 맥을 잇고 있는 이동호(54) 씨. 그는 '농부'가 아니라 전남 담양의 '소쇄원 지기'이다.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이름난 향토사학자이다. 그의 명함에는 '토종 배추, 무 종자 지킴이'라고 적혀 있다. 전남 담양군 수북면 자택의 텃밭에서 한 해 200포기 정도의 토종 배추, 무 농사를 40년째 짓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우선 토종 배추는 일반 개량종보다 키가 2.5∼3배는 크고, 병충해와 기후변화에도 강해서 농약이나 비료 없이 자연재배가 가능하다. 수분 함량이 적어 저장성이 좋고 김치를 담가 3~5년간 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한다. 수분이 많아 시간이 지나면 물러져 녹아버리는 개량종에 비해 보존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토종 배추 종자는 원산지가 지중해이며, 중국 당나라를 거쳐 신라 때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고려 때는 왕실에서 재배했고, 약으로도 쓰였습니다. 원래 '숭 또는 숭채'라 했고, 조선시대 들어와 본격적으로 재배를 권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씨가 토종 배추와 무 종자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로부터 토종 배추 종자와 재배법을 이어받아 매년 재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최근 국립종자원에 문의해봤더니, 담당 연구원이 '이런 토종 배추 종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굉장히 귀한 것이며 관심을 두고 지켜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토종 배추는 130∼150㎝까지 키가 큰다. 여름에 씨를 맺으면 그것을 받아서 8월 중순경에 다시 심어 90일 뒤인 가을에 김장용으로 수확할 수 있다. 먹을 만큼만 캐고 남겨두면 겨울을 나고, 봄에 꽃피우기 전에 어린순을 '봄동'으로 먹어도 된다는 설명이다. 이씨는 "토종 배추씨는 좁쌀만 해서 반말 정도, 즉 10ℓ 정도를 확보하면 수백만 평을 심을 수 있으며 유채꽃처럼 보기 좋아 관상용으로 훌륭하다"고 말했다.

이런 그가 경주와 인연을 맺는다. 현재 경주에는 그의 종자를 보급받은 최성규 씨가 내남에서 토종 배추, 무를 시범 재배하고 있다. 그가 전통 배추 무위 개량 보급지로 경주를 선택한 것은 천년 고도라는 전통과 토종 먹거리가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유적만 보고 끝내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지 않겠습니까. 먹거리가 풍성해지면 경주 관광이 더욱 풍성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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