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교무실로 간 아이

입력 2016-07-12 20:51:02

학창시절 교무실은 불편한 곳, 웬만하면 들어가고 싶지 않은 장소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선생님들이 예전보다 더 다정다감하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교무실이 편안한 장소, 만만한 공간은 아닐 것이다.

지난주 대구의 한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선생님들이 모두 퇴근한 뒤 교무실에 들어가 자신의 기말고사 답안지를 고쳤다. 보도대로라면 60점짜리 답안지를 90점짜리로 고쳤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너무나 슬프고 안쓰러웠다.

교무실에 숨어 들어갈 때까지 그 아이는 얼마나 많은 고통에 시달렸을까. 선생님이 불러서 교무실에 들어갈 때도 쭈뼛쭈뼛하는 것이 보통 아이들이다. 하물며 선생님들이 모두 퇴근하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들 눈에 띄지 않게 교무실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뒤져 답안지를 고치는 동안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안했을까. 대체 얼마나 궁지에 몰렸으면 중학교 1학년 아이가 교무실에 몰래 들어가서 자신의 시험 답안지를 고칠 생각을 했을까.

개인의 가난과 불행, 고난과 범죄를 사회구조 탓으로 돌리는 시각에 반대한다. 사안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사회구조 문제 이상으로 개인의 책임이 크다. 어린아이에서 청소년으로,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갈수록 개인의 책임은 더욱 커진다.

예컨대 나이 30을 넘긴 사람이 뜨거운 난로에 데어 화상을 입었다면 그 책임의 대부분은 자신에게 있다. 그러나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화상을 입었다면 그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인 아이가 세상을 알면 얼마나 알 것인가. 그 아이에게는 성적이 전부였을 것이다. 다른 출구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못 치면 다음에 더 열심히 해서 잘 치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시험 성적이 전부는 아니란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세상을 모르는 이 작은아이가 자신의 답안지를 고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친구들이 하교한 뒤, 선생님들이 모두 퇴근하실 때까지 아무도 없는 교정에 홀로 남아, 번뇌와 두려움에 떨며 기회를 보도록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 작은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사람은 누구인가?

시험 성적 조작 파문이 일어난 뒤 학부모들의 반응은 기막혔다.

'어떻게 교무실에 침입했을까. 성적 조작이 그렇게 쉬운 거야? 시험 답안지 관리를 그처럼 허투루 하다니! 학교 선생들은 뭐 하는 거야? 우리 아이도 이번에 시험 잘못 쳤는데, 재시한다니 잘됐다.(해당 학교가 재시를 결정한 것인지는 모른다.) 우리 애는 시험 잘 봤다는데 재시하면 어떡해….'

국정원이라도 뚫렸나? 학생이 교무실에 몰래 들어가 성적을 고치는 과정이 문제의 초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거의 해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면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학생이 나온다. 몇 해 전에는 초등학생이 성적 문제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은 성적 때문에 아이들이 죽어도 괜찮은 나라인가? 그러고도 이 나라가 제정신인가?

시험, 열심히 공부해서 잘 치면 좋다. 그러나 시험 좀 못 쳤다고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인가? 이번 문제의 책임은 오롯이 우리 기성세대들에게 있다.

아이들아! 시험 못 쳐도 괜찮다. 시험을 못 쳤을 뿐, 너희는 실패한 게 아니다. 그러니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부모님은 너희가 좀 더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랄 뿐, 시험을 못 쳐도 변함없이 너희를 사랑한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너희들이다.

공부 못한다고 다른 것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공부 말고도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 공부가 싫으면 만화책, 소설책이라도 열심히 읽어라.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네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열심히 해라. 학창시절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지만 않으면 된다. 걱정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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