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책 칼럼
오전 10시 본회의장은 텅 비었다
잡담하는 의원, 인터넷 하는 의원
졸고 있는 의원에 막말 의원까지
근로자라면 당연히 해고감 해당
오전 10시, 본회의장은 텅 비었다. 개회시간이 10분이 지났는데도 의석은 절반밖에 차지 않았다. 출석 체크를 한 다음엔 그나마 다들 빠져나간다. 방송은 개회 정족수인 60여 명을 가까스로 넘긴 본회의장에 여기저기 잡담을 하는 의원, 인터넷에 몰두하고 있는 의원들을 보여준다. 졸고 있는 의원도 있다. 비유하자면 이런 불량 근로자는 당연히 해고감이다. 어떻든 본회의장에 잠깐이라도 들어온 의원은 출석수당으로 3만1천360원을 받는다.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업무인데도 말이다.
'일하는 국회'를 외치는 이 나라 20대 국회의 풍경이다. 장엄하게 꾸민 본회의장에 총리와 장관들을 불러놓고 대정부질문이란 걸 하지만 정작 의원들은 별 관심이 없다. 지상파 텔레비전 카메라가 생중계하는 청문회였다면 이러지 않는다. 열정 가득한 모습으로 세상의 불의를 척결하겠다는 듯이 두 눈 부릅뜨고 불려나온 증인들을 죄인 다루듯 했을 것이다.
이튿날은 좀 나았다. 전날 본회의장의 작태가 방송을 타자 의원들이 제법 자리를 지켰다. 그러다 사고가 터졌다.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이 대정부질문을 할 때 여당 석에서 야유가 있었다. 그러자 김 의원은 동료의원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반말로 "간섭하지 마라"고 소리쳤다. "대전의 이장우 의원, 대전시민을 부끄럽게 하지 마"라고도 했다. 한두 차례 공방이 더 오간 뒤 "다음 총선에서 대전 시민들, 저런 사람 좀 제발 뽑지 말아 주세요"라는 말도 했다. 김순례 의원에게는 "공부 좀 더하라"고 타박을 준 뒤 "이렇게 저질 국회의원들 하고 다 같이 국회의원 한다는 게 정말 창피해 죽겠네"라며 연타석 홈런을 쳤다. 이쯤 되면 '짐승들의 국회'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아니 차라리 공중부양을 하고 해머가 난무하던 동물 국회가 박진감이라도 있었다. 저질은 똑같으니 말이다.
만약 영국이나 미국의 의회에서 이런 막말이 있었다면 그 의원은 당장 쫓겨났을 것이다. 선진 민주정에선 특정의원을 겨냥한 비난도 금물이다. 그럴 필요가 있으면 완곡한 비유와 유머가 동원된다. 유머가 없는 의회는 후진적 민주정의 특색 중 하나다. 유머도 내공이 있어야 자연스레 구사되는 것이다. 의원들 자질이 저들 말마따나 '저질'이니 어찌 순발력 있게 유머가 발동되겠는가? 그런데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우리 국회가 이런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 바로 패거리 정치 때문인 것이다. 이념과 정책으로 뭉치지 않고 그저 입신 영달을 위해 지역 기반 정당에 모여들었거나 인기 있는 명망가 밑에 줄을 선 것이다 보니 유달리 우리 정당들은 패거리 의식이 강하다. 그리고 보스의 눈에 들어야 하니, 튀어야 산다. 무엇보다도 이미지 정치로 승승장구한 과두(寡頭)들의 성공이 그렇지 못한 의원이나, 초선 의원들에게 '한 건'을 열망하게 만들었다.
실상이 이러니 면책특권 포기 운운하는 것도 코미디다. 특권을 내려놓는다면서 늘 거론되는 것이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인데 이 두 특권은 헌법 조문에 떡하니 박혀 있어서 개헌을 하지 않는 한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다.
원래 독재정권에 대항해 의원들이 제 몫을 다하게 하려고 두 특권을 둔 것인데 이제 부패 정치인과 '한 건'을 노리는 정치인의 방패가 되어 있다. 하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부패 정치인이든 막말 정치인이든 윤리위에서 가차 없이 응징하고, 회기 중에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동업자 의식을 발휘할 게 아니라, 예외 없이 처리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절대 그러지 않는다. 서로 물어뜯어 죽일 듯이 싸우지만 상대의 비리나 부패엔 애써 눈감는다. 상호보험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니 '특권 내려놓기'는 그저 말뿐이다.
하긴 까놓고 말해 특권을 좀 가진들 어떻겠는가? 나랏일만 제대로 한다면 말이다. 상임위원장이 되어 한 달에 1천만원이 넘는 직책수당을 삥땅을 치든, 국민 세금으로 외유를 하든, 최고급 식당에서 끼리끼리 만찬을 즐기든 다 눈감아 줄 수 있다. 제발 해야 할 일 반만이라도 제대로 한다면 그깟 것은 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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