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나는 사회 증오범죄] 여성혐오를 그린 책과 영화들

입력 2016-07-01 22:30:06

'자유부인' (정비석)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우에노 치즈코)
'아가씨'(박찬욱 감독)
'소셜 포비아' (홍석재 감독)

성경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범죄는 카인에 의한 아벨 살해. 이때 뿌려진 증오의 씨는 현재에 이르러 '혐오범죄'라는 불청객으로 발아(發芽) 되었다.

심청전의 뺑덕어미나 흥부전의 놀부 마누라도 혐오스러운 여성상의 범주에 들 수 있지만, 고전소설 '배비장전'에 나오는 기생 애랑이야말로 '혐오여성'의 백미 격으로 둘 만하다. 이별하는 정인(情人)에게 사랑의 증표로 어금니를 요구했다 하니 그 행실은 남녀 모두에게 공분을 살 만하다 하겠다. 최근 개봉된 영화 '아가씨'도 여성혐오 여부를 놓고 논란이 진행 중이다. 소설, 도서, 영화 속에 나타난 '여성혐오'를 정리해 보았다.

◆소설'사회과학 서적 속에 나타난 여성혐오

▶'자유부인'(정비석))=벌써 4번이나 영화로 제작된 이 소설은 바람난 유부녀가 벌이는 외설적인 문학적 서사의 대표 격이다. 1970~90년대 비디오, 영화계를 풍미했던 '~부인' 시리즈의 원조 격인 셈이다. 소설은 1950년대 여성들을 '자신의 잘못을 숨기는 데 능하고 허영과 허세로 살림을 망치고 자신의 욕망을 컨트롤하지 못해 유혹에 빠져드는 존재'로 묘사하며 여성혐오적 시각을 감추지 않고 있다. 당시 여성잡지 '여성계'도 신식 여성들을 '기생충형' '모사형' '부로조아형' 등으로 분류하며 비하하고 있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우에노 치즈코)=일본의 권위 있는 사회학자인 저자는 일본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혐오를 이 한 권의 책으로 비판했다. 일본 황실의 여성비하 문화부터 '위안부' '성매매 비즈니스' '아동성학대자를 통해 본 남녀혐오'까지 다양한 예시를 동원해 비판의 서술을 펼쳐 놓는다. 심리학적 접근 방식을 통해 가족과 결혼 시스템 안에 스며든 여성혐오에 대해 분석한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한다'(리베카 솔닛)=이번엔 성별을 바꿔 남성에게 퍼부어지는 미움에 대해 다룬다. 이 책은 전 세계에서 공감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맨스플레인'(man+explain)의 발단이 된 책이다. 저자는 잘난 척하며 가르치기를 일삼는 일부 남성들의 우스꽝스러운 일화에서 출발해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성별, 경제, 인종, 권력으로 양분된 차별의 모습을 단숨에 그려낸다. 뭐든지 설명하고 가르치려 드는 남자들에게 날리는 통쾌한 한 방이다.

▶'여성혐오가 어쨌다구?'(윤보라 외 6인)=최근 성 소수자, 장애인, 다문화가족 등 다양한 사회혐오가 밖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책은 여성혐오를 키워드로 여섯 필자가 사회 곳곳에 내재되어 있는 여성혐오는 물론 사회 저변의 혐오 문제까지 언급한다. 여성증오의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해결 방법 제시에는 미흡했다는 서평도 보인다.

◆영화 속에 나오는 여성혐오

▶'아가씨'(박찬욱 감독)=일제강점기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아가씨 히데코와 재산을 노리는 백작,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받은 하녀, 아가씨의 후견인이 돈과 사랑을 빼앗기 위해 다투는 이야기다. 개봉 전부터 파격적인 동성애 장면이 입소문을 타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런 동성애를 보는 시각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좋아하면 설레고 외면하면 질투 나듯 남녀 간의 사랑이나 동성 간의 사랑이나 똑같은 것"이라고 넘겨버렸다. 영화에서 또 하나의 코드는 지질한 남자 즉 '남성혐오 코드'다. 극 중 아가씨와 하녀가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반면 남성들의 캐릭터는 변태 기질에 지질함까지 갖추고 있다. 이 영화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여성혐오, 동성애부터 남성혐오까지 폭넓게 담아냄으로써 많은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소셜 포비아'(홍석재 감독)=이 영화는 한 군인의 자살에 대해 레나라는 여성이 쓴 악플이 SNS상에서 남성들을 분노시키는 것으로 시작된다. 레나는 온갖 악플과 남성 비하를 쏟아내며 남성을 저주한다. 분노한 남자들은 '현피'(현장에서 만나 복수하는 것)를 위해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하지만 집에서 남자들이 발견한 것은 그녀의 시체였다. 악플러였지만 자신 또한 남성들의 폭언에 고통받는 피해자였던 그녀는 마침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소셜 포비아는 단순히 여성혐오를 나타내는 영화가 아니다.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한 인간을 저주하고 혐오하는 과정이, 그리하여 비극(죽음)으로 연결되는 과정이 너무 어처구니없이 진행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홍석재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인터넷상에서 부딪히는 '혐남 혐녀 현상'을 담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베 회원 논란을 빚었던 류준열이 인기 BJ '양게' 역을 맡으며 극을 재미있게 이끌어간다.

▶'탐정: 더 비기닝'(김정훈 감독)=추리에 관심이 많은 권상우와 강력계 형사팀장으로 있다 좌천된 성동일이 서로 연합해 범인을 잡는다는 내용이다. 두 주인공은 시종일관 집에서 부인에게 제압당하는 완벽한 약자, 지질남으로 그려진다. 수시로 무릎 꿇고 잔소리만 듣고 돈 벌어 오라는 성화에 시달린다. 이런 남편 학대 때문에 여성혐오 논란이 늘 따라다닌다. 이 둘은 곧 '아내 뒷담화'로 의기투합하는데 이를테면 '남자끼리반여성연대'인 셈이다.

이들은 친구 부인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뛰어드는데 여기서 숨 막히는 탐정, 추리 요소가 펼쳐진다.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도 재미있지만 살해당한 세 여성이 모두 바람을 피운 여자라는 공통점으로 엮이면서 영화는 다시 한 번 여성혐오 코드로 연결된다.

▶'4등'(정지우 감독)=엄마(이항나 분)는 아들을 수영대회 1등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늘 그를 다그친다. 물론 여기에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모성이 있지만 영화의 시선은 '1등 지상주의'에 매몰된 엄마만 그려진다. 이 잔소리, 다그침 때문에 엄마는 아들을 대리만족 대상이나 아바타로 여기는 나쁜 이미지만 남는다. 재능은 가졌지만 만년 4등을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 준호, 1등의 노예가 된 엄마, 체벌을 정당화시키는 코치와의 싸움은 가족 갈등으로까지 비화된다. 입상권도 아닌 그렇다고 포기하기도 뭐한 4등, 여기서 펼쳐지는 엄마의 치맛바람에 오버랩되는 '비뚤어진 모성'은 이 사회가 안고 있는 슬픈 자화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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