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확산, 계층간 무한 경쟁, 개인의 파편화, 가정·이웃의 붕괴…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 서울 강남역 사건 현장에 붙어 있던 한 장의 포스트잇 메모지.
이 짧고 간결한 문구는 최근 신문지상과 SNS에서 화제와 이슈의 한 중심에 있었다. 이 한 줄엔 비극적 삶을 마감한 여성에 대한 추모와, 증오범죄 고발, 이성(異性) 혐오 신드롬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안타까운 현실에 하소연을 쏟아내지만 사회학자들은 이런 현상은 이미 오래전에 예견돼 있었고 유감스럽게도 이런 사건은 더 확산될 수밖에 없다는 비극적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이번 주 '즐거운 주말'은 최근 핫 이슈가 되었던 '증오범죄' '이성혐오'를 다뤄 보았다.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
◆사회심리학으로 본 '증오범죄'
증오범죄(hatred crime)는 인종, 국적, 종교, 성적(性的) 지향 등과 관련해 특정 집단에 증오심을 가지고 그 집단에 속한 사람에게 범죄행위를 가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분노가 도사리고 있는지 알려주는 단적인 증거가 '보복운전'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내면에 있던 분노가 길거리에서 표출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권리가 침해받았을 때 너무 쉽게 화(火)에 노출된다는 것이고 이런 분노가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 분노의 실체는 무엇이고 그 밑자락엔 어떤 사회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각계각층의 시각을 빌려 접근해 보도록 하자.
◆신자유주의 사조가 사회 분노 원인
우리 사회의 분노를 설명할 때 준거 틀로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는 정부 권력의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과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 실업의 대량화, 빈부 격차 확대, 기업의 합병'파산, 외국 자본에 대한 종속 심화, 가정 해체 등 부작용이 따른다. 국가, 도시, 기업, 가계가 모두 하나의 투기장에 휘말리게 되고 개인, 기업, 국가, 계층 간 무한경쟁이 초래된다. 세계화가 낳은 이런 무자비한 경쟁을 가리켜 '초(超)이전투구식 경쟁'이라는 신조어가 나타났을 정도다.
'분노사회'를 저술한 칼럼니스트 정지우 씨는 "IMF 이후 우리 사회에 본격 접목된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파편화를 초래해 공감 대신 이기심, 공동체 대신 개인에 몰두하게 만들어 나갔다"며 "극심해진 빈부 격차는 사랑, 관용 대신 분노를 낳으며 사회를 증오의 현장으로 만들어 나갔다"고 분석했다.
◆N포세대 좌절이 사회적 불만으로
최근 어느 공무원 시험장. 합격 정원 18명에 커트라인은 만점. 그런데 만점 동점자가 무려 40명이었다. 젊은이들의 절망적 취업난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본래 경쟁 체제에선 다수가 승자가 될 수 없는 필연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흔히 N포세대로 통칭되는 젊은이들은 절망적인 경제 현실 앞에서 모든 꿈을 포기한 채 자포자기에 내몰린다. 영남대 허창덕(사회학과) 교수는 "이들은 몇몇 상류 계층만 향유하는 고급차, 브랜드 아파트, 해외여행, 백화점 쇼핑을 접하며 이것들이 자신들에겐 신기루일 뿐이라는 현실에 좌절한다"며 "이 좌절은 곧 기성세대를 증오하고 이들을 품고 있는 사회 체제를 증오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청년'하면 열정, 패기, 도전, 희망 등 긍정적인 단어들을 먼저 생각하지만 인터넷 검색창에 검색하면 '청년 실업' '헬조선' '흙수저' '열정페이' '빨대족' 같은 단어들이 따라다닌다. 이들은 이런 어휘 속에서 자신들의 우울과 화(火)를 내면화하고 사회적 불만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심리적 지지그룹 1차 집단의 붕괴
개인들이 사회, 제도와 갈등을 빚을 때 마찰을 피해 잠시 숨을 돌리는 곳이 가정, 이웃, 학교, 친구 같은 1차 집단이다. 혈연적 정과 가족, 친구 간 친밀도가 살아 있는 이 1차 집단은 개인과 사회가 마찰을 일으킬 때 완충지로 기능한다. 허 교수는 "옛날에는 이 1차 집단이 구성원의 심리적 지지그룹으로 기능하면서 개인의 일탈을 방지하는 역할까지 했는데 이 시스템이 거의 마비됐다"고 말하고 "1차 집단이 기능을 못하는 상태에서 개인이 사회와 트러블이 생길 때 곧바로 사회와 부딪히게 된다"고 분석했다. 사회안전망이 제거된 상태에서 개인의 분노와 저주는 사회에 바로 퍼부어지고 그런 현상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폭력이나 테러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획일화된 '정답사회'에 절망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터져 나오는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집단주의에 대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 성립된 집단주의는 갑을문화로 지칭되는 위계질서, 군대식 명령하달, 지연'혈연으로 지칭되는 인맥문화를 만들어 냈다. 이들은 기성세대들이 한국 사회를 '정답사회'(하나의 정답을 미리 정해놓고 강요하는 사회)로 만들어 놓고 획일적 사고를 강요하는 것에 못마땅해한다.
정지우(칼람니스트) 씨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복종하는 위계질서, 집단적으로 하나의 답(答)을 강조하는 사회, 개인의 공간과 시간을 무시하는 문화에 젊은 세대들은 치욕과 분노를 느낀다"고 말하고 "이런 문화는 한국의 직장, 가족, 학교 문화 등과 얽히며 세대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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