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를 드릴 때 제대에 항상 초를 켜둔다. 보통 평일에는 양쪽 하나씩, 주일과 큰 축일에는 양쪽 두 개 혹은 세 개씩 불을 붙인다. 그렇다면 오른쪽 3개 왼쪽에 3개를 놓을 때, 어느 쪽부터 붙여야 할까. 오른쪽부터 붙여야 할까, 왼쪽부터 붙여야 할까? 바깥쪽부터 붙여야 할까,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붙여야 할까? 아마도 독자들 가운데 성당 제대에서 봉사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잠시 헛갈리실 것이다. 오른쪽이던가? 왼쪽이던가? 큰 축일에 성당의 미사 연습을 하면서 복사(제대에 봉사하는 신자)들이 실제 이 문제로 옥신각신하다 결론을 못 내고 신부에게 물어 온 적이 있다.
정답은 있다. 그런데 그 정답은 오른쪽, 왼쪽이 아니라 불붙이다는 것이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안쪽부터든 바깥쪽부터든, 그것은 관습이나 상황에 맞게 하면 되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제때 미사가 시작될 수 있도록 촛불이 타오르게 하는데 있다.
또 성탄절이나 부활절과 같이 천주교에서 가장 큰 잔치를 열 때도 비슷한 일이 종종 벌어진다. 대개 미사가 끝나면 점심때 즈음 되기 때문에 대부분 성당에서는 신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경우에 따라 간혹 뷔페를 부르기도 하지만, 대부분 성당의 여교우들이 직접 식사를 준비한다. 여러 사람을 대접해야 하기 때문에 복잡한 메뉴를 준비하기는 어렵고, 보통 메뉴는 비빔밥, 국밥, 아니면 잔치국수이다. 그런데 이따금 식사봉사를 하는 단체의 고민 소리가 들린다. 국밥으로 해야 할 지, 비빔밥으로 해야 할 지! 누구는 국물이 좋다고 하고, 또 누구는 비빔밥이 최고라 한다. 결국 의견이 팽팽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 또 본당신부에게 결정을 미룬다. "신부님! 국밥으로 할까요, 비빔밥으로 할까요?" 참! 국밥이든, 비빔밥이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메뉴가 아니라 잔칫날 교우들 모두가 함께 기쁘게 나누어 먹고 서로 친교를 나누는 데 있지 않은가?
살아가면서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 고만고만한 일들이 많이 보인다. 이런 것들은 얼마든지 서로 양보할 수 있다. 촛불을 오른쪽부터 켜든지 왼쪽부터 켜든지, 잔치 때 국밥을 하든, 비빔밥을 하든, 아니면 잔치국수를 하든 그것은 부수적이고 우연적인 일들이다. 별 상관이 없다. 그런데 상관있는 일들이 있다. 정말 양보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초를 켜는 것, 함께 잔치를 벌이는 것, 바로 본질적인 것들이다.
'그것이 그것으로서 있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우리는 본질(本質)이라고 부른다.
우리 모두 본질적으로 살아가야겠다. 본질을 놓치고 다른 것을 얻는다면 너무 큰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말에 본질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답다' 라고 표현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어머니는 어머니답게, 교사는 교사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언론인은 언론인답게, 정치인은 정치인답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교회 또한, 신앙인 또한 본질적으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은 예수를 따라 사는 것이고, 예수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바라본다면, 세상 살아가기 편한 삶의 길과 적당히 타협한다면 그것은 본질을 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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