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정상 한 바퀴 돌면 "경상·전라·충청 3道 순례 끝"
삼도봉기념탑 빗방울이 남쪽으로 떨어지면 경북, 서쪽으로 떨어지면 전북, 동쪽으로 떨어지면 충북으로 흘러든다고 한다. 민주지산은 국토의 한복판에 우뚝 서 호남과 영남을, 충청과 경상도를 가르는 경계 역할을 한다. 삼도봉을 한 바퀴 돌면 3개 도(道)를 도는 것이니 30초 만에 '3도 순례'가 완성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역사적으로 중원(中原) 패권을 다투던 백제, 신라가 접전을 벌였던 곳이고 지정학적으로 영남, 호남의 날 선 대립을 완화시켜 주는 '완충의 장'이기도 했다. '엄홍길과 함께하는 한국 명산 16좌' 6월 산행은 한반도 중부의 명산 영동 민주지산을 다녀왔다.
◆백두대간의 한복판, 천혜의 전망대
강원도 진부령에서 산맥을 일으킨 백두대간은 소백산맥을 지나면서 잠시 숨을 고르는데 이곳이 추풍령~민주지산~황악산 능선이다. 백두대간의 배꼽이자 천혜의 전망대 입지를 갖춘 덕에 연중 대간꾼들을 영동으로 불러들인다.
아웃도어 전문업체 밀레의 '한국명산 16좌'가 열리는 충북 영동에는 전국에서 1천200여 명의 등산객들이 몰려들었다. 땀을 흘리며 연단에 오른 엄 대장은 "800만 명 흥행을 거뒀던 영화 '히말라야'가 곧 일본 30개 관서 개봉된다"며 "한국에서 영화를 놓친 분들은 일본에 가서 보고 오면 된다"며 농담을 건넸다.
산행 코스는 물한계곡~삼마재골~삼도봉을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로 진행됐다. 산행 들머리 물한계곡은 '물이 차다'고 해서 '한천'(寒川)으로 불리지만 한자로는 '물한'(勿閑)으로 표기해 여러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계곡, 숲 속에는 우리나라 전체 식물 종의 16%가 자라고 있어 '자연 환경명소 100선' 중 10걸로 지정되기도 했다.
◆18년 전 특전사부대 비극 간직한 산
민주지산의 비사(秘史)와 관련해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것이 18년 전 특전사 대원들의 산악훈련 사고다. 1998년 4월 정상 부근에서 야영을 하던 특전사 대원들은 갑작스러운 폭설, 강추위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초봄 날씨에 방한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고도로 훈련된 정예 군인들도 자연 앞에 얼마나 무기력한지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정상 바로 밑 현장에는 사고를 추모하기 위한 대피소가 세워졌고 그해 6월부터 특전사 전군에 고어텍스 원단이 보급되었다고 한다.
UDT 출신으로 특수부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엄 대장은 "우리도 훈련 땐 경주 감포에서 독도까지 5박 6일 동안 헤엄쳐 건너고 30㎏ 군장을 메고 대청봉을 수도 없이 오르내렸다"며 "1998년 안나푸르나 등정 사고 때 그 소식을 듣고 며칠 동안 마음이 안 좋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삼도봉 탑에서 원정대와 일일이 기념촬영을 해주던 엄 대장은 당시 사고 느낌을 묻는 질문에 '호국 보훈의 달'이라 마음이 더 씁쓸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군 시절 근처 특공여단에서 군대생활을 했다는 류대현(52'경산시 임당동) 씨는 "당시 민주지산 일대는 주변 특전사, 공수부대의 산악훈련 코스로 악명이 높았다"며 "당시 이를 갈며 훈련하던 산을 다시 오르니 옛 기억들이 다시 살아난다"고 소감을 말했다.
◆덕유산'가야산'황악산 능선 한눈에
민주지산은 영화 '집으로'의 촬영 현장이었다. 할머니가 끓여온 닭백숙을 집어던지며 '치킨을 가져오라'던 꼬마 유승호는 벌써 '국민 남동생'이 되어 여심을 흔들고 있으니 새삼 격세지감을 느낀다.
영화 속 상촌면 계곡을 따라 원정대는 미니미골로 접어든다. 산행 길 초입에서 잘 조성된 침엽수림을 만났다. 일행은 시원한 발처럼 내리쳐진 수림을 걸으며 산소 호흡을 맘껏 즐긴다.
대전에서 온 서현진(43) 씨는 "잣나무 숲 속에서 음이온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진다"며 "오랜만에 피톤치드 샤워를 즐기니 머리까지 리셋되는 느낌"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황룡사 입구를 출발, 쾌적한 숲 속을 한 시간쯤 걸어 올랐다. 잡목 속에서 삼마재골 이정표가 나타났다. 이 재는 영동군 상촌면과 김천을 연결하는 교통로로 옛 부항장이 성(盛)했을 때 장꾼들이 쉬어가던 고개였다.
일행은 이제 고개서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오늘 목적지인 삼도봉으로 향했다. 급경사, 계단길을 펼쳐 놓던 산은 숨이 턱 막혀올 무렵 드디어 정상을 내주었다. 안부(鞍部)엔 정상 조망을 즐기는 원정대들이 원색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남쪽으로 덕유산 자락부터 가야산 능선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밀목재 넘어 황악산도 실루엣으로 펼쳐진다. 삼도봉에선 동북쪽 능선이 막혀 있어 아쉽게도 대간 길 능선을 볼 수 없다. 대간 전체 조망은 석기봉이나 정상에 가야 볼 수 있다.
◆팔공산 청소년클라이밍대회 열어=삼도봉에선 매년 10월 10일 3도 주민들이 모여 군민화합을 위한 제사, 문화행사를 연다. 3개 군의 우정과 화합을 다지고자 1989년 시작한 행사가 27년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정상에서 모든 산행객들과 일일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던 엄 대장도 한낮 더위를 피해 삼마재골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18일 엄홍길휴먼재단에서는 대구에서 의미 있는 행사를 하나 열었다. 팔공산에서 '청소년클라이밍대회' 전국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엄 대장은 개회사에서 "매일신문과 함께 진행하는 한국 명산 16좌 행사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데 또 전국 규모 등산축제를 대구에서 열게 되어 감회가 깊다"며 "등산 인재 육성을 위한 청소년 클라이밍대회를 당분간 대구에서 개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차재우 엄홍길휴먼재단 이사도 "대구 산사나이들의 생사를 초월한 우정을 다뤘던 '히말라야'로 맺어진 인연이 다시 전국대회 개최로 이어져 대구 산악인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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