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깨진 꿈, 남은 현실

입력 2016-06-22 20:44:44

박근혜 대통령의 아이콘은 '원칙과 소신'이다. 당 대표일 때, 대선 후보일 때 현안 문제를 '원칙과 소신'으로 밀고 나갔다.

세종시 건립 백지화 위기가 왔을 때, 이명박정부가 영남권 신공항을 백지화했을 때도 "국민과의 약속인 만큼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소신을 보였다. 여기에 많은 국민들이 박수와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영남권 신공항 문제에 있어 그 원칙과 소신을 버렸다. 대선 후보일 때 수차례 영남권 신공항이 필요하고 지역민의 의견을 수렴해 반드시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영남권 5개 시도 지사가 모여 밀양과 가덕도 두 곳을 후보로 추천하고 입지 결정을 정부에 위임한다고 하자 객관적인 외국 기관 용역을 통해 영남권 신공항 입지를 선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영남권 시도민들은 약속을 믿었고 용역 결과를 1년여 동안 손꼽아 기다렸다. 밀양 아니면 가덕도 어느 한 곳이 분명히 될 것이란 확신에 부산은 궐기대회까지 열며 가덕도 주장을 외쳤고 나머지 영남권 시도들은 부산을 향해 '약속'을 지키라며 대응을 해왔다.

하지만 신공항 입지 발표 결과는 황당했다. 아니 참담했다.

정부는 김해공항 확장안을 최선의 대안이라고 들고 나왔다. 그리고 단순 확장이 아니라 '김해 신공항'이라며 수도권 언론을 통해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한술 더 떠 청와대는 신공항 약속을 지켰다고 공식 발표했다.

애초 정부는 김해공항 확장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신공항 필요성이 제기됐고 단순히 영남권 신공항이 아니라 이미 포화 상태에 도달하고 있는 인천공항 역할을 나눌 수 있는 제2 관문공항으로 건설하자는 안이 공론화됐다. 정부도 여기에 공감을 하며 비싼 돈 써가며 프랑스 전문 기관에 용역을 맡겼다.

신공항 백지화의 출발이 어디부터인지, 왜 박 대통령이 그토록 애써 강조했던 원칙과 소신을 버렸는지 궁금하다.

차기 대선을 위해 영남권 갈등 봉합이 필요했는지, 아니면 밀양이 선정되면 '불복'하겠다고 선언한 부산의 민심이 무서웠는지, 또는 수도권도 아닌 지방에 웬 '관문공항'이냐며 비아냥을 해온 수도권 일부 언론을 의식했는지 알 수는 없다.

대통령은 입지 선정 전날 국토부 보고를 받았고 최선의 대안인 만큼 수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토부 관계자들이 '원칙과 소신'에 따라 밀양도 가덕도도 아닌 김해 확장안이 최선이라고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믿을 영남권 시도민은 없다고 생각한다. 부산은 신공항 입지 선정을 앞두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입지 선정이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줄곧 비난해 왔다. 신공항 발표 이후 대다수 영남권 시도민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부산의 주장처럼 '밀양 지지'는 아니었지만 결국 작용을 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대통령과 정부를 믿었던 결과로 대구경북은 이제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떠안게 됐다.

밀양 신공항 건설은 다음의 문제로 넘기더라도 당장 대구국제공항과 군 공항인 K-2 이전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제로 떠안게 됐다. 대구공항을 아예 포기하고 K-2 군 공항을 이전할 건지, 아니면 K-2를 이전하더라도 대구공항은 그대로 살려둘 것인지가 문제다. 당초 대구는 밀양 신공항이 건설되면 대구공항 기능은 신공항으로 통합하고 공항 부지를 팔아 K-2 기지를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국방부와 협의를 진행해 왔고 거의 결론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대구의 백년대계가 걸린 만큼 당장 묘안을 내기도 쉽지 않은 부분이다.

신공항 입지 선정을 앞두고 부산은 '가덕도 아니면 백지화'를 선언했다. 그리고 '불복'이란 용어를 꺼내 들었다. 합의를 깬 행위였지만 결국 최소한의 '부산 발전'을 지켜냈다. '신공항 백지화'에 따른 후속 대책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이제 대구경북의 주체적인 판단만이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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