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0118
국어시간에 이육사의 '광야'라는 시를 배웠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시라서 우리들의 수업 집중도는 평소의 반도 되지 않았다. 나 역시 공책에 낙서를 하면서 선생님의 설명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던 중이었다.
"이육사는 본명이 아니고, 대구 형무소에 있을 때의 수감번호예요."
딱딱한 시어 풀이가 아닌, 작가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나도 모르게 귀가 열렸다. 그것도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사람의 시를 저렇게 버젓이 배우고 있다니.
부끄럽게도 중학교에 올라와서야 나는 '이육사'라는 시인을 알게 되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열일곱 번이나 감옥 생활을 한 그는 달랑 시집 한 권만 남겨 놓은 채, 40세의 나이에 감옥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렇게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독립운동을 해야 했어요?"
조금 전까지 나와 낙서를 하던, 지웅이가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조금 있다가 하고, 우선은 시에 대해서 배워 볼게요."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칠판에 적힌 시를 한목소리로 읽게 하셨다.
알 듯 말 듯한, 시어들은 나를 궁금증의 바다에 풍덩 빠트렸다.
"시인은 눈 내리는 혹독한 겨울 속에서도 매화향기 가득한 봄을 희망했어요. 자신을 희생하면서 꼭 광복을 이루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이죠?"
선생님은 한 번 더 우리들에게 시를 읽게 하셨다. 설명을 들어서인지, 처음보다 더 우렁찬 목소리로 시를 읽었다.
"자, 그럼 아까 전에 지웅이가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볼까요?"
알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찾아보자는 것은 우리들에게 그 답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쓸데없는 질문을 한 지웅이를 째려보았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통치를 받았을 때,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쳤어요. 그것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아프면 가족 모두의 마음이 아픈 것도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그러면 우리들이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선생님의 질문에 우리 반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쯤에서 지웅이가 먼저 손을 들어서 발표를 해야 했다. 나를 비롯한 여러 친구의 눈총을 느꼈는지, 질문할 때와는 다르게 소극적으로 손을 들었다.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은 현재의 신분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학생이므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훌륭한 인재로 자라는 것입니다."
공익광고 시간에 숱하게 들어본 대답이다. 뻔한 대답을 한 지웅이에게 우리들은 야유를 보냈다.
"자! 조용. 지웅이 대답이 맞아요. 우리들이 당장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최고로 중요한 일이지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지 않으면 나라가 바로 설 수가 없죠."
지웅이를 옹호해주시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용기를 얻어서 나도 손을 들었다.
"우리나라는 지금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일본 통치하에서 하나였던 나라가 독립과 동시에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물론 그때도 미국과 소련이 들어와서 멋대로 우리나라를 둘로 나누어 버렸습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떨어져 지냈던 시간보다 함께 보냈던 시간이 더 깁니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 간다면 그 시간이 역전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통일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통일이 되면 우리가 손해예요. 북한은 너무 가난해서 우리가 다 먹여 살려야 해요. 그러면 세금도 더 많이 내야 되고, 등골 휘어지는 우리 아버지는 저의 용돈부터 줄일지 몰라요."
통일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통일이 더욱더 절실하다고 느꼈다.
"통일을 위해 첫 번째 해야 하는 일이 청소년들의 의식을 바꾸는 거예요. 통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요.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청소년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통일은 정말로 아주 먼 나라의 옛 이야기가 될지 몰라요. 자! 우리도 지금부터 통일운동가가 되어 봅시다. 1학년 8반 교실에 수감된 통일운동가의 수감번호는 자신의 생년월일이 될 겁니다. 그래서 매달 한 편씩 통일의 긍정적인 모습에 대해서 500자 이상 적어 냅니다."
국어 선생님답게 글쓰기로 우리들의 의식을 바꾸시려나 보다. 나라 사랑을 위해 우리 반 친구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자신의 수감번호를 달고 통일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나의 수감번호는 '030118'이다.
김세영(남양주 송라중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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