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동해안 백사장] 해안침식에 '모래 보충' 땜질만

입력 2016-06-02 21:13:09

방파제·항만에 조류 막혀

모래가 사라져 자갈만 남은 포항 월포해수욕장. 지난해처럼 올해도 수억원을 들여 다른 지역에서 모래를 구입, 이른바
모래가 사라져 자갈만 남은 포항 월포해수욕장. 지난해처럼 올해도 수억원을 들여 다른 지역에서 모래를 구입, 이른바 '양빈' 작업을 할 계획이다. 매년 이런 작업이 계속되지만, 백사장 실종 현상은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 처방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포항 배형욱 기자

우리나라에 한정된 모래를 사고파는 방식으로 해안침식 지역을 복구하다가는 언젠가 모래가 완전히 고갈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천 등 자연이 수백 년간에 걸쳐 모래를 만들어 해안으로 보내 이뤄진 백사장이 이대로 간다면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자연이 해주던 공급'순환을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 그대로를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해수욕장에 양빈·잠제사업 치중, 효과는 '미미'

◆당장 눈앞의 해안침식 복원만 급급한 중앙'지방정부

중앙정부와 경상북도는 동해안 42개 지역을 연안정비사업지구로 지정하고 지난 2010년부터 오는 2019년까지 10년간에 걸쳐 모두 4천146억원을 투입한다. 이 가운데 해안가를 꾸미는 친수공간 사업이 950여억원이며, 나머지 3천100여억원은 바다에 보를 쌓는 잠제(빠져나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와 해안가에 모래를 붓는 양빈(모래를 붓는 작업) 등 복원사업에 사용되고 있다.

복원사업지역 중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 곳은 380억원 규모의 포항 송도해수욕장이며, 앞으로 양빈에 사용될 모래 71만2천㎥가 당장 필요하다. 이곳 앞바다에는 900m 길이의 잠제도 설치되고 있다.

포항 도구해수욕장 복구사업도 올해 새로 사업이 책정됐으며, 양빈 15만㎥와 잠제 400m가 설치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 같은 복원이라 해도 모래는 계속해서 바다와 육지로 사라져 가고 있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계속 예산을 세워 돈을 넣어야 하는 지경이다.

◇지자체 모래 채취 금지, 채울 모래 구입도 힘들어

◆한정된 모래, 사고파는 것도 한계에 이르러

우리나라에서 해안침식 복구사업이 가장 잘 된 곳으로 지목되는 부산 송도해수욕장 백사장. 이곳 모래는 경북도에서 반출된 것들이다. 울진 등 경북 동해안 어항에 모래가 퇴적돼 배를 정박할 수 없으면 이 모래를 파내야 하는데, 이때 파낸 모래들이 부산 등으로 계속해서 팔려나갔다고 경북도는 밝혔다.

그러다 지난 2013년 울진군이 20년간 모래를 다른 곳에 판매한 규사 광물업자에 제동을 걸었고, 이후 동해안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모래 채취를 금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지자체가 모래 채취를 금지하면 해안침식으로 고통받는 지역에 공급할 모래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즉 포항 송도'도구해수욕장, 영덕 남호'장사해수욕장, 울진 봉평2지구 등 지역 양빈에 사용될 25t 트럭 7만여 대 분량의 모래 112만㎥도 구하기 어렵게 된다. 최근 5년 동안 이 지역에 중앙정부'경북도 사업으로 반입된 모래는 없다.

◇구조물로 복원사업, 또 다른 해안 침식 부작용

◆외국에서도 이제 모래 구하기 어렵다

경북도'한동대 등에 따르면 30~40년 전부터 일본'영국'미국 등 선진국들도 해안침식 문제를 겪기 시작했다. 이곳 국가들도 해안침식이 발생하는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지 못한 채 잠제 등 구조물을 세워 복원사업을 벌였지만, 구조물 주변 외의 다른 곳이 침식되기 시작하는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관광'휴양 도시인 마이애미의 경우만 해도 1950~1960년대에 해변이 호텔 건설 등으로 급속히 개발되면서 1970년대에 해안침식 현상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백사장이 줄면서 건물 붕괴 등 위협까지 닥친 마이애미 해변 일대의 건물주 등은 수천억원을 들여 양빈 사업을 벌였고, 10년이 훨씬 지나서야 다시 관광지로서 활력을 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침식-복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천에 저수지·보 우후죽순…모래 공급기능 상실

◆하천도 모래 운반 역할 멈춰

모래가 바다로 빠져나가 사라지는 것은 자연현상이며, 사람이 이를 가속화시키는 역할에 앞장서면서 해안침식이라는 위기를 맞게 됐다. 또 외국 등의 사례에서 볼 때 바다에서 해안침식에 대한 해답을 찾기도 무리가 있다.

모래를 바다로 보내 백사장을 만들어왔던 든든한 하천도 그 역할을 하기 어려워졌다. 지난 1940년대부터 지나치게 많은 저수지와 보가 들어서면서 하천의 물길을 막아 모래 운반 기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경북에는 서정천 등 28개 하천이 동해로 곧장 흐르는 것으로 경북도가 조사했다. 하지만 이 하천들은 대부분 저수지'보에 가로막혀 건천화하고 있다. 현재 포항'영덕'울진'경주 등 경북 동해안에는 지자체 관리 저수지 4천886개, 농어촌공사 관리 저수지 515개 등 모두 5천401개의 저수지가 있다. 보 역시 2천499개가 설치돼 하천 물길에 방해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다로 흘러갈 물도, 모래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어항·포구·항만 등 시설 확장 막고 하천도 살려야

◆해법은? 하천 복원, 방파제'어항 확장 규제다

포항 등 경북 동해안 4개 지역에 설치된 저수지 중 75%에 해당하는 3천627개는 1960년대 이전에 설치된 것으로, 대부분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 1970년대 농지개혁 등으로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저수지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하천이 멈추거나 갇혔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저수지가 생겨났음에도 아직 불필요한 저수지에 대한 정확한 조사는 진행된 적이 없고, 다만 노후 저수지를 유지하지 못해 용도폐기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포항시도 "노후 저수지가 아니면 이제까지 특별히 용도폐기한 적은 없다"고 말하는 등 다른 지자체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여기다 경북 동해안에는 지방어항 19개, 소규모 어촌계 항'포구 86개, 국가어항 11개, 항만 4개가 바다 흐름을 막으며 모랫길을 덩달아 막아 세우고 있다.

더욱이 이들 어항'항만시설은 해마다 예산이 책정될 때마다 시설을 더 늘리고 있고, 친수공간 목적의 시설도 들어설 예정이다.

자연이 계속해서 해오던 일이 사람에 의해 막혔다면 이제는 자연이 원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거나 사람이 할 수 있는 자연의 역할을 찾는 것이 백사장을 되찾을 방법이라는 주장이 여기서 나온다.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안경모 교수는 "근본적 해법은 원래 하천이 하던 일을 막아놨기 때문에 자연이 하던 일을 사람이 대신하는 수밖에 없다"며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저수지'보 등에 막혀 제 기능을 상실한 하천의 원래 기능을 돌려놓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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