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가덕도, 떼쓰는 부산] 막장으로 가는 부산 신공항 유치전

입력 2016-05-31 22:30:02

5개 시도 합의 파기한 부산 "정부도 못 믿겠다"

부산시 구청장
부산시 구청장'군수협의회는 30일 부산 가덕도 대항에 있는 신공항 후보지 현황판 앞에서 가덕도 신공항 유치 기원문을 낭독하고, 풍선을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안 멈추는 게 아니라 못 멈추는 부산의 유치전.'

부산이 정부의 신공항 입지 용역에 대해 불복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유치 활동을 자제하자는 5개 시'도 합의를 파기하는 것을 넘어서 '정부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부산의 막무가내 행태에는 ▷가덕도 입지 우위에 대한 자신감 부족 ▷결과가 가져올 정치적 파장에 대비한 퇴로 확보 ▷민자 유치를 통한 신공항 독자 추진의 명분 쌓기 등이 배경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

부산이 떠들썩하게 유치전을 벌이는 가장 큰 이유는 가덕도 입지의 장점이 사실상 무력화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덕도가 밀양보다 낫다고 손꼽아 온 ▷장애물 안전 ▷건설비의 경제성 ▷24시간 운영 등의 요소들이 '항공학적 검토'라는 개념으로 인해 이점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것이다.

실제 비행기가 다니는 항로 등을 기준으로 장애물 절토량을 산정하는 항공학적 검토의 도입으로 밀양 후보지의 절토 대상 산봉우리 수와 절토량이 크게 줄었다. 이로써 밀양 후보지는 장애물 안전성이 높아졌고, 건설비의 경제성에서도 가덕도(6조원)보다 밀양(4조6천억원)이 우위를 점하게 됐다. 가덕도의 경우 바다 매립을 위해 필요한 절토량(1억2천만㎥)이 밀양(5천300만㎥)보다 더 많아져 '친환경'이란 이점도 빛이 바랬다.

여기에 부산의 패착이 더해졌다. 부산은 2011년 유치전 때 계획했던 활주로 규모를 2본에서 1본으로 바꿨다. 건설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활주로를 1본으로 줄임에 따라 김해공항 존치 논리를 함께 내세워야 했고, 그동안 신공항 건설의 당위성으로 김해공항 이전을 주장해온 기존의 견해를 뒤집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진 것이다. 더불어 가덕도공항이 김해공항과 공역이 겹치는 문제와 김해공항 주변의 소음 민원 등이 해결 과제로 남게 됐다.

'24시간 운영'이라는 장점도 입지 선정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요소가 아닌 상황이다. 해상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오후 11시에서 오전 5시 사이 운항 편수가 전체 4%에 불과하다.

◆유치전의 속내는 퇴로 확보?

이처럼 가덕도가 내세울 장점이 줄다 보니 유치 실패를 가정한 '출구전략'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부산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신공항 문제를 정략적으로 활용했고, 가덕도가 탈락할 경우 치러야 할 '정치적 비용'도 그만큼 더 커졌다.

그동안 부산 정치권은 가덕도를 끊임없이 정치 쟁점화했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2014년 2월 시장 선거 출마선언 장소를 가덕도로 정하고, "가덕도 신공항 유치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밝혔다. 선거 직전에는 새누리당이 서 시장을 돕기 위해 중앙당 현장선거대책위원회 회의를 가덕도에서 열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도 지난 3월 "더민주 국회의원 5명만 뽑아주면 박근혜정부 임기 내에 신공항 착공을 이루겠다"며 부산지역 총선 이슈로 신공항을 부상시켰다.

이 때문에 정부의 최종 용역에서 가덕도 유치에 실패하면 부산 정치권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부산시장을 비롯해 부산 정치권이 '퇴로' 확보를 위해 '정치적 판단에 따른 불공정한 결정'이라는 핑계를 만들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4개 시'도 관계자는 "가덕도 후보지가 유리하다고 일방적으로 홍보한 뒤 밀양으로 결정되면 정치적인 결정으로 몰아가기 위한 의도"라며 "결과에 따라 정치적 입지에 치명상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책임을 덜기 위한 목적으로 과열된 유치전을 벌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신공항 독자 추진 위한 명분 쌓기

부산의 정부 용역 불복 움직임은 신공항 독자 추진의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과열된 유치전이 지역 갈등으로 번져 신공항 건설이 백지화되면 '민자 유치를 통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대안으로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은 지난해 1월 영남권 5개 시'도가 정부 용역 결과에 따르기로 합의하기 이전부터 독자적인 신공항 건설을 주장해왔다. 2014년 12월 서 시장은 민자 유치로 독자적인 신공항 유치 계획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정부가 50%, 부산시가 10%, 민간이 40%를 투자하는 주식회사를 설립해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 공항을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서 시장은 이후에도 독자 추진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내비친 바 있다.

부산의 '지역 이기주의' 행태와 달리, 대구와 경북, 울산, 경남 등 4개 시'도는 '유치활동 자제'라는 합의 원칙을 끝까지 지킬 계획이다. 공식 절차를 통해 밀양 후보지의 장점을 주장하고, 이를 뒷받침할 자료를 충실히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는 것. 이는 정부가 외부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신공항 입지를 결정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장상수 대구시의회 남부권신공항유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부산은 더는 억지를 부리지 말고 나머지 4개 시'도처럼 외국 용역기관의 객관적인 평가 결과에 맡기면 된다"며 "부산이 원칙에 벗어난 주장을 계속하면 합의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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