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의 한시 산책] 아무리 되뇌어도 돌아갈 수 없는…그때 유년 시절

입력 2016-05-27 22:30:02

고려 말기 시인 익재 이제현
고려 말기 시인 익재 이제현

눈에 아직 삼삼하네

이제현

한쪽 어깨에다 봄옷 벗어 걸치고서

벗들과 채소꽃 핀 밭으로 뛰어들어

이리저리 내달리며 나비를 쫓던 일이

어제 놀던 그 일처럼 눈앞에 삼삼하네

脫却春衣掛一肩(탈각춘의괘일견)

呼朋去入菜花田(호붕거입채화전)

東馳西走追胡蝶(동치서주추호접)

昨日嬉遊尙宛然(작일희유상완연)

고려 말기의 걸출한 시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이 고려가요를 한시로 번역한 '소악부'(小樂府) 가운데 하나다. 보다시피 이 작품은 현재 시점에서 어린 날을 되새김질하는 낯익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묘사가 아니라 진술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의 내용도 극히 단순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10호짜리 액자에다 이 시를 그려서 책상 앞에다 걸어두고 싶다.

왜 그럴까? 아마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저토록 아름다운 총천연색 추억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 치고 벗들과 함께 나비나 잠자리를 잡으려고 산이나 들로 뛰어다니지 않았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구나 세속 세계의 어둠을 자세하게 몰랐던 그 당시엔 나비를 잡으면서 마음껏 뛰노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세계의 거의 대부분이기도 했다. 물론 세월의 흐름에 따른 착시현상이 포함되어 있기야 하겠지만, 그때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의 발목은 밥을 먹여주는 직장이란 말뚝에 아주 견고하게 묶여 있다. 제아무리 벗어나려 애를 써 봐도 결국은 말뚝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나비를 같이 잡던 불알친구들도 상호 간에 연락이 뚝 끊어진 지가 이미 오래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상(喪)을 당해야 낯선 도시 낯선 병원의 영안실에서 쓸쓸하게 만나, 방울토마토와 삶은 돼지고기를 안주로 하여 소주를 마시다가 헤어진다. 누군가가 죽지 않으면 좀처럼 다시 만날 수가 없으므로, 우리가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목숨을 바쳐야 할 판이다.

변한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고향 쪽도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우리들의 고향은 산업화와 더불어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다. 후천개벽(後天開闢)의 현장인 고향에 나비 잡을 채마밭이 남아 있다 해도 더 이상 나비 잡을 아이들이 없다. 고향은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지리상의 공간이 아니라, 아무리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길이 없는 시간상의 좌표 위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더 돌아가고 싶어지는 고향!

하지만 오늘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이 시나 읊조리고 있으련다. 돌아가 보면 후천개벽만으로는 아직도 부족한 게 있다는 것인지 포클레인 떼들이 동네 뒷산에 올라가서 고향 마을을 노려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 붉은 대가리를 높이 쳐들고, 그 거대한 아가리를 딱 벌린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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