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진학 상담실에서] 진학성숙도

입력 2016-05-15 22:30:02

자아인식의 기초 위에서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 준비하는 정도를 진로성숙도라 한다면 진로 과정 중 하나인 진학에서도 성숙도를 말할 수 있겠다. 다음 3가지 질문을 생각해보자.

"○○대학에 몇 등급이면 갈 수 있나요?"

"○○대학, ○○학과에 현재 저의 성적이면 합격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가요?"

"○○대학, ○○학과에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지원하려고 하는데 현재 저의 학생부 기록은 어느 정도 준비가 된 것인지, 더 보완할 점은 없는지요?"

첫 번째 질문자는 진로 및 진학 성숙도가 매우 낮은 학생이겠는데 질문만큼이나 간단한 대답을 원한다. 상담교사가 생각이 복잡해져 말이 길어지면 기대를 접는 눈치를 곧잘 보인다. 조급해져 학생 맘에 드는 대답을 한발 늦게 제시하려 하면 학생의 신뢰와 상담교사로서의 권위를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다. 내 경험으로는 지체 없는 반문이 최선이다. "현재 성적은?" "그 대학은 어떻게 알게 되었니?" "학과는?" 등의 질문을 통해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것이 서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경력 초기에 무식한 질문이라고 조목조목 지적했던 '잘났던' 경험이 있다.

두 번째는 학과 선택의 진정성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즉, 자신의 진로와 연관한 선택인지 아니면 취업률이나 학과 평판 등을 보고 한번 '질러보는' 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전자는 전형 방법에 따른 합불 사례 등을 제시하는 진학 상담이 되겠지만 대학의 학과 홈페이지를 통해 커리큘럼을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다. 후자는 당연히 진로 상담이 병행되는 데 다양한 직업분야와 관련 대학 전공분야를 풍부하게 제시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이겠다.

세 번째 질문자는 그야말로 진학성숙도가 높은 학생이다. 진로진학 목표가 잘 설정되어 있고 전형 방법에 따른 준비를 착실히 해 왔음도 알 수 있다. 고수를 만난 셈으로 진로진학상담교사의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러나 과욕을 부리다가는 상담을 망친다. 상담자가 모든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을 다 꿰뚫고 있을 수는 없다. 학생은 관심대학과 학과를 오랫동안 탐색해 왔고 해당 대학의 입시관계자를 만났을 수도 있으며, 어쩌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러 왔는지도 모른다. 원론적인 소리만 늘어놓다가는 나중에 학생 볼 낯이 없게 될지도 모른다. 경험으로는 내가 더 많이 아는 상담자가 아니라 의논 상대가 되어준다는 생각으로 솔직하고 진지하게 상담에 임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역시 경력 초기에 여러 데이터를 한껏 펼쳐보이며 이기려고 했던 기억이 남사스럽다.

상담의 상황은 너무도 다양하여 어떤 사례도 정형화된 모범 답안으로 제시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진화된 '알파고'라도 상담을 대체하지는 못하리라. 진로진학상담교사의 상담은 알파고의 능력보다 더 위대하다는 난데없는 말은 상담에 대한 자부심의 엉뚱한 표현으로 이해해 주시길….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