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종소리/ 장정옥 지음/ 성바오로 펴냄
소설 '고요한 종소리'는 조선 땅을 피로 물들인 신유박해를 주제로 쓴 중견 소설가 장정옥의 연작소설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 '비단길'이 봇짐장수 아들 여수리와 선암 정약종이 나눈 망연지교의 우정을 그린 소설이라면, 이번 작품은 정조의 죽음으로 시작된 피바람의 시대를 가장 처절하게 견딘 황사영의 삶을 그린 것이다.
당대 최고의 명문가 자손인 정약종과 황사영은 서로 조카사위이자 처삼촌의 관계며, 초기 조선 천주교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데 크게 공헌한 사람들이다.
'백 번 생각해도 세상을 구할 양약이기에 성심을 다해서 서양학을 했습니다.'
그들은 천주학이 세상을 구할 양약이라는 믿음을 가졌고, 그 확신 아래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오늘날 한국천주교회는 신유년에 순교한 이들 대부분을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로 지정했다. 그들 중에서 황사영만 빠져 있다.
16세에 진사시에 급제한 영민한 젊은이를 신에게로 나아가게 한 것은 무엇이고, 위정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황사영이 여태 반역자의 오명을 벗지 못한 채로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소설은 출생의 비밀에 감춰진 아버지 황사영의 비참한 죽음의 역사를 되짚어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황사영이 능지처참 형으로 죽음을 맞이했을 때 황경한은 두 살이었다. 어머니 정난주는 제주도로 귀양을 가던 중에 두 살배기 어린 아들을 추자도 갯바위에 내려놓고 갔다. 사람대접도 못 받는 죄인의 아들로 자라기보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자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스무 살이 된 황경한은 양아버지 오 씨에게서 출생의 비밀을 듣고 아버지 황사영을 찾아서 분원으로 온다.
추자도를 드나들던 봇짐장수 여수리가 아버지 황사영과 각별한 사이였던 것을 알게 된 경한은 그를 따라서 둔황까지 비단길을 가게 된다.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과 동행하게 된 경한은 비단길의 척박한 삶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며 조금씩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황사영의 피를 받은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아간다.
친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된 아들은 아버지가 쓴 백서에 대해 풍문으로만 듣고,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각국의 상인들이 모이는 비단길을 경험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교류방안이 그릇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서양에서는 가난한 나라를 도와주기도 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넓은 세상을 향해서 도움을 청해야 했던 제 아버님은 사람 사이에 있을 법한 일을 글로 쓴 것이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걱정하는 한 선비의 순수한 염려를 백서에 담은 거라고 저는 이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참으로 먼 길을 돌아온 아들은 첫 고해 이후 아버지를 진심 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들 부자 사이의 화해는 역사와의 화해를 상징한다.
'고요한 종소리'는 역적의 아들이 어른이 되어 바라본 아버지의 삶이며, 조선 말기의 암흑을 담은 수난사이며, 초기 천주교의 수난사이기도 하다.
지은이 장정옥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2008년에 여성동아장편소설 공모에 '스무 살의 축제'가 당선됐다. 대표작으로 '스무 살의 축제' '비단길' 등이 있다. 416쪽, 1만3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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