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전기차 세상… 충전소 뜨고, 정비소 진다?

입력 2016-04-22 22:30:03

독일의 에너지자급마을인 볼퍼츠하우젠에는 태양광으로 운영하는 전기차 충전소가 마련돼 있다. 1천300여 명이 사는 이 마을은 전체 전기 수요의 30% 이상을 풍력
독일의 에너지자급마을인 볼퍼츠하우젠에는 태양광으로 운영하는 전기차 충전소가 마련돼 있다. 1천300여 명이 사는 이 마을은 전체 전기 수요의 30% 이상을 풍력'바이오가스'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 연합뉴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가전박람회(CES)에서 화제를 모은 제품은 최신 스마트폰이나 TV가 아니었다. GM이 공개한 전기자동차 '볼트(Bolt) EV'에 눈길이 더 집중됐다. '자동차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전기차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린 계기였다.

볼트에 이어 테슬라의 '모델3'까지 인기를 끌면서 전기차 시대는 성큼 다가온 모양새다.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는 예측이 잇따르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전기차가 보편화되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주유소 대신 충전소

전기차 시장은 폭발적 성장세가 점쳐진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월과 2월 전 세계에 출하된 순수 전기차(EV'배터리로만 구동되는 자동차)는 각각 2만716대와 2만690대다. 전년 동기 대비 48.8%, 41.3% 성장한 수치다. 또 스위스 금융그룹 'UBS'는 앞으로 5년 동안 세계 전기차 시장이 연평균 30~50%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기차가 2020년쯤 전체 자동차 시장의 20%에 육박할 것이란 전문가들의 전망이 들어맞는다면 기존 주유소 중 일부는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편의점 GS25와 GS슈퍼마켓을 운영하는 GS리테일은 벌써 전기차 충전 서비스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전국에서 가장 전기자동차가 많은 제주도(지난해 기준 약 2천400대)의 경우 이 문제가 벌써 현실적 고민이 되고 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달 서귀포에서 열린 국제전기자동차 엑스포에서 "대부분 주유소는 요지에 자리 잡아 위치 부가가치가 큰 만큼 향후 전기차 생태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주유소에 설치하는 전기차용 충전기의 방폭(폭발 방지) 성능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의 '위험물 안전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최근 입법 예고했다. 급속 충전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할 때까지는 주유소가 충전하면서 간단한 사무를 보거나 휴식을 취하는 '스마트 스테이션'으로 변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네 정비소의 위기

전기차 시대 도래와 함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카센터가 위기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 '엔진 없는 차'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량과 비교해 부품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까지 탑재한 무인 자율주행 전기차는 '탈것'보다는 '달리는 컴퓨터'에 가깝다.

엔진'변속기뿐만이 아니다. 배출가스가 없는 전기차에는 머플러 등 배기물 처리장치도 필요하지 않다. 오일 제품 사용도 크게 줄게 된다. 물론 연료 탱크'펌프 등도 사라진다. 자동차부품 기업인 삼보모터스 이재술(55) 상무는 "구동 방식에 따라 차량 구성 부품이 확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자동차산업 전반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자동차부품 업계도 충격에 대비하고 있다. 자동차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영역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타이어업계조차도 전기차 전용 제품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이 상무는 "도태되지 않으려면 새로 수요가 창출될 부품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내연기관 차량용 엔진 부품을 주로 만들었지만 지난해부터 국내 최초로 전기차용 감속기도 함께 생산한다"고 소개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오래된 차나 단종된 차도 전기차로 튜닝할 수 있게끔 '자동차 구조'장치 변경에 관한 규정'을 고쳐 최근 고시했다. 현재는 차령이 5년 미만인 차만 전기차로 바꿀 수 있는데 차령 제한을 없앤 것이다.

◆각광받는 신산업

전기차가 대세를 이루더라도 산업지도에 급격한 '반전'은 없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대중화 시동 건 전기차' 보고서에서 "전기차 부품이나 모듈, 지능형 솔루션 등에서 독보적 기업이 등장하더라도 기존 생태계와 공생 관계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자동차의 기본적 기능을 고려하면 기존 전장 부품 영역의 확장된 형태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그래도 주목받는 분야는 있다. 가장 뜨거운 시장은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산업이다. 과거 소니(Sony)와 함께 일본 전자산업을 대표했던 파나소닉(Panasonic)의 경우 테슬라에 자사 제품을 공급하면서 기사회생하고 있다. 올해 CES 부스에도 테슬라 전기차를 전시했던 이 회사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 1위(36%)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기업도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제작사들이 배터리 개발 경쟁에 직접 나서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1차례 충전으로 500㎞를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를 2019년 출시한다는 목표를 공개한 독일 벤츠는 배터리 생산을 위해 5억유로를 투자하기로 했다. 진공청소기 회사인 영국 다이슨 같은 가전회사도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추진 중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현재 승용차 중심인 전기차가 택시'버스 등으로 확대될지도 관심이다. 전기차에 거액의 보조금을 주면서까지 정부가 보급 확대에 매달리는 것은 탄소 배출 감소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려면 당연히 가동률이 높은 이동수단이 전기차로 전환돼야 한다. 하지만 공급 과잉 상태인 택시의 경우 감차 대상에서 전기 차량 제외 여부가 걸림돌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최초의 전기차가 택시였다는 점이다. 영국 발명가 토머스 파커가 1873년 처음 개발한 전기차는 1896년 미국 아메리칸전기자동차회사가 승용차 200여 대를 만들어 마차 대신 영업하면서 대환영을 받았다. 조용하고 냄새도 나지 않았던 덕분이다. 그러나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삼는 자동차에 밀려 사장됐다가 친환경 트렌드에 힘입어 120년 만에 다시 각광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금처럼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화력 발전을 계속한다면 전기차의 친환경성은 그 의미를 잃을 것으로 지적한다. 2014년 미국 미네소타대학 연구진은 전기차가 석탄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충전해서 달린다면 휘발유 차보다 환경오염을 3배 더 많이 유발한다고 발표했다. 덴마크 국립환경연구소도 "미국에서 휘발유로 주행하는 차가 2020년까지 10% 증가한다면 대기 오염에 따른 사망자는 870명 발생하지만 전기차가 똑같은 비율로 증가하면 사망자는 1천617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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