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비움과 채움

입력 2016-04-19 19:10:44

대구미술협회와 교류하는 인도의 비스바 바라티 대학교는 1901년 12월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설립한 학교다. 타고르는 한국에 대한 깊은 사랑과 위로를 드러낸 두 편의 시 '동방의 등불'과 '패자의 노래'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시인이자 예술가다. 타고르 사후 이 대학교는 1951년 중앙정부에 귀속되어 국립대학이 되었으며 중앙정부의 현직 총리가 총장직을 역임해오고 있다. 지식 전수와 더불어 예술적 덕목 함양을 강조하는 학풍이 100여 년 동안 유지되어 오고 있다. 그 결과 음악, 미술, 무용, 문학 등에서 인도 최고의 인재를 배출하는 산실이 됐다. 이곳에서 배출된 대표적 인물들을 살펴보면,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빈곤을 연구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고, 정치가로는 인디라 간디 대통령, 영화감독으로는 레이, 미술가로는 인도의 피카소라 불리는 파하드 후세인을 포함해 티엡 메타, 지티시 칼라트 등 인도 현대미술에 영향을 끼친 유명한 미술가들이 있다.

교류를 위한 사전 조사를 통해 알아본 이 대학교는 한 학교에서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을 정도로 대단한 학교였고, 인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학교였다. 그러나 이 대학은 콜카타에서 북쪽에 위치한 산티니케탄이라는 시골에 있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거대하고 높은 건물이 있는 대학이 아니라 아담한 건물과 조용한 분위기를 가진 시골 대학이었다. 인도의 여건이 우리와 똑같지는 않겠지만, 미술대학 칼라바반을 방문했을 때 학생들이 그렇게 열악한 시설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낡은 건물과 좁은 실기실, 부족한 기자재, 그리고 질 낮은 재료로 작업에 열중하는 학생들을 보니 조금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캔버스에 그려진 작업물을 보고 나는 한 번 더 당황했다. 그들의 작업은 획일적이지 않았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해 내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면 교수의 지도법이 남다를 것이라 여기고 수업 커리큘럼을 살펴봤다. 하지만 교수의 지도는 말 그대로 '자유'였다. 우리 대학 교육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더 좋은 공간, 더 나은 기자재, 더 빠른 정보와 지식을 원하고 또 채운다. 학생에게 많은 것을 채워 넣어 사회에서 쓰임이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이 대학교에서 느낀 것은 '비움'의 가치였다. 비유하자면,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각종 조미료와 과잉된 재료에 지쳐 본연의 맛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그런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과 마음속의 불필요한 요소들을 비우고 정화시켜 원초적인 본질에서 시작하는 것이 자아를 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비스바 바라티 대학교는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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